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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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연마후[緣馬後] 춘추 시대 맹지반(孟之反)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쳐 올 적에 맨 뒤에 떨어져 오면서 자기 말을 채찍질하며 말하기를 “내가 감히 뒤처지려는 것이 아니라 말이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 연막[蓮幕] 막부(幕府)의 미칭(美稱). 남제(南齊) 때 왕검(王儉)의 막부를 연화지(蓮花池)라고 일컬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南史 卷49 庾杲之傳>
❏ 연매[燕禖] 제비가 찾아오는 따뜻한 봄날에 제왕이 아들을 얻기 위해 올리는 제사이다.
❏ 연매궁독[燕禖弓韣] 왕의 후계자가 탄생한 것을 말한다. 연매(燕禖)는 제비가 날아오는 따뜻한 봄철에 제왕의 후계자를 얻기 위해 제사드리는 것을 말하고, 궁독(弓韣)은 아들을 낳았을 때 천지 사방을 향해 활을 쏘아 축하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禮記 月令, 內則>
❏ 연맥[碾麥] 보리를 방아 찧음.
❏ 연명[淵明] 연명은 동진(東晉) 때의 고사인 도잠(陶潛)의 자이다. 그는 일찍이 팽택령(彭澤令)을 지내다가 한 번은 군(郡)에서 독우(督郵)가 왔는데 아전이 “의당 큰 띠를 띠고 알현해야 한다.”고 하자 “내가 쌀 5두(斗)의 봉록 때문에 독우 따위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 하고는 곧장 팽택 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온 후 일생을 유유자적하였다. <晉書 卷九十四>
❏ 연명[淵明] 연명은 진(晉) 나라 도잠(陶潛)의 자(字). 그는 진 나라 말엽에 집이 가난하여 친구들의 권고로 팽택 령(彭澤令)이 된 지 80여 일 만에 호연히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서 전원(田園)으로 돌아왔다. <晉書 卷九十四>
❏ 연명서소[淵明舒嘯] 도연명(陶淵明)이 가슴 펴고 휘파람 붐.
❏ 연명일운군미전[淵明逸韻君眉展] 연명은 동진(東晉)의 고사 도잠(陶潛)의 자인데, 일찍이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편지로 도잠을 부르자, 도잠이 말하기를 “저는 술을 좋아하니 법사께서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즉시 가겠습니다.” 하고 마침내 그 곳에 당도하니, 법사가 도잠에게 술을 금하고 백련사에 들기를 권유하자, 도잠이 눈썹을 찡그리고 가버렸다는 고사를 전용한 것이다.
❏ 연명자[淵明子] 도잠(陶潛)의 시 책자(責子)에, 아들 다섯이 모두 지필(紙筆)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제 6련(聯)에 “자식 통은 아홉 살이나 먹었으면서, 찾는 것이라곤 배와 밤이라네.[通子垂九齡 但覓梨與栗]”라 하였다.
❏ 연명조만반람여[淵明早晩返籃輿] 도연명(陶淵明)이 다리 병이 있어서 놀러 나갈 적에는 남여(藍輿)를 타고 다녔다.
❏ 연명책자[淵明責子] 도연명(陶淵明)이 아들을 나무람. 도연명은 그 다섯 아들을 나무라는 뜻으로 시를 지었는데, 전문은 “白髮被兩鬢 肌膚不復實 雖有五男兒 總不好紙筆 阿舒已二八 懶惰故無匹 阿宣行志學 而不愛文術 雍端年十三 不識六與七 通子垂九齡 但覓梨與栗 天運苟如此 且進盃中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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