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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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도수[島瘦] 가도의 시가 여위고 딱딱한 것을 숭상하므로 이런 일컬음이 나오게 된 것이다. 소식(蘇軾)의 글에 “가도는 여위고, 맹교(孟郊)는 차고, 원결(元結)은 가볍고, 백거이(白居易)는 탁하다.”라고 하였다.
❏ 도수[塗脩] 주 소왕(周昭王) 때의 도수국(塗脩國)을 말한다.
❏ 도수교한[島瘦郊寒] 당(唐) 나라 때의 시인인 가도(賈島)와 맹교(孟郊)의 시풍(詩風)을 평하는 말로, 수(瘦)는 바싹 말라 파리하다는 뜻이고, 한(寒)은 옷이 남루한 비렁뱅이라는 뜻이다.
❏ 도수자[盜嫂者] 형수를 훔친 자란 한 고조(漢高祖)의 공신(功臣)인 진평(陳平)을 이른다. 관영(灌嬰) 등이 일찍이 진평을 참소하여 말하기를 “들으니 진평은 집에 있을 때에 자기 형수를 훔쳐 살았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史記 陳丞相世家>
❏ 도습[蹈襲] 옛 것을 좇아서 그대로 한다. 초습(勦襲). 금사(金史) 이경전(李經傳)에 “시를 짓되 각고(刻苦)를 다하며 감히 전 사람을 도습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 도시[倒屎] 신발을 거꾸로 신는다는 말로, 대단히 반가워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한나라 때 왕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 그리고 왕찬은 한 대에 삼공을 지냈다. 왕찬은 재능이 뛰어나 바둑판이 흐트러져도 즉시 원상태로 복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헌제가 잠시 서쪽으로 옮겼을 때 장안으로 이주를 했다. 그곳에는 학문이 뛰어난 좌중랑장 채옹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늘 손님으로 붐볐다. 어느 날 왕찬이 그의 집을 방문하자 채옹은 신발을 거꾸로 신고나가[倒屎] 그를 영접했다. 왕찬이 들어오자 빈객들은 그의 나이가 어리고 용모가 왜소했으므로 외면했다. 이에 채옹은 “이 사람은 왕공의 손자로서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소. 나는 그보다 못하오. 우리 집에 있는 서적과 문학작품은 모두 그에게 주려고 합니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이때부터 도시(倒屎)는 ‘신발을 거꾸로 신는다는 뜻으로, 대단히 반가워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삼국지(三國志) 왕찬전(王粲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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