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형주[荊州] ‘형급형양유형주(荊及衡陽維荊州)’의 형(衡)은 형산(衡山)으로 지금의 호북성 남장현(南?縣)을 말한다. 대체로 호북성 중부, 남부, 호남성 북부, 중부, 사천성(四川省)과 귀주성(貴州省)의 일부를 관할했다.
❏ 형주[荊州] 형주는 당 현종(唐玄宗) 때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낸 한조종(韓朝宗)인데, 평소에 숨은 인재를 발탁하길 좋아하여 최종지(崔宗之)·엄무(嚴武) 등을 조정에 천거하였으므로 당시의 선비들이 그의 인정을 받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이백(李白)의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 “평생에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지기보다는 한형주가 한번 알아주기를 원할 뿐이다.[生不用封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라고 하였다.
❏ 형주[荊州] 호남성(湖南省).
❏ 형주고사[荊州古事] 형주(荊州)의 고사란 곧 중국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선주(先主)가 위(魏) 나라 조조(曹操)의 공격을 받아 쫓겨서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에게 가 의지하고 있었던 일을 가리킨 것이다. <三國志 卷三十二>
❏ 형주면[荊州面] 당(唐) 나라 때 명신(名臣) 한조종(韓朝宗)을 말한다. 그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에 이백(李白)이 글을 올려 이르기를 “살아서 만호후 봉함이 필요치 않고, 다만 한 형주를 한 번만이라도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卷二 與韓荊州書>
❏ 형주하행득신조[荊州何幸得身遭] 당(唐) 나라 한조종(韓朝宗)이 형주 장사(荊州長史)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 주어 사인(士人)의 추앙를 받았는데, 이백(李白)이 그에게 보낸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 “이 세상에 태어나 만호후가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그저 한형주를 한 번이라도 보았으면 좋겠다[生不用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고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는 글이 실려 있다.
❏ 형창[螢窓] 형창은 진(晉) 나라 때 차윤(車胤)이 밤에 개똥불을 모아서 그 빛을 이용하여 글을 읽으며 고학(苦學)하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서재를 말하기도 한다.
❏ 형창설안[螢窓雪案] 중국 진(晉)나라 차윤(車胤)이 반딧불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이 눈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갖은 고생을 하며 꾸준히 학문을 닦은 공을 이름을 이른다.
❏ 형처[荊妻] 남에게 자기 아내를 낮추어 일컫는 말이다.
❏ 형초[荊楚]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 형피수돈[形疲瘦頓] 몸이 피곤하고, 마르고 초췌하다.
'옛글[古典]산책 > 옛글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역[形役], 형옥[荊玉], 형원[荊猿], 형인양월[荊人兩刖], 형제이난[兄弟二難], 형제혁장[兄弟鬩墻] (0) | 2025.03.24 |
---|---|
형수화[荊樹花], 형승지지[形勝之地], 형애제공[兄愛弟恭], 형양[桁楊], 형양금[荊楊金], 형양안[衡陽雁] (1) | 2025.03.20 |
형부나함택[荊府羅含宅], 형산읍옥[衡山泣玉], 형석[衡石], 형설[螢雪], 형설지공[螢雪之功] (0) | 2025.03.18 |
형림[蘅林], 형모[衡茅], 형문[衡門], 형박[荊璞], 형박삼헌[荊璞三獻], 형벽수주[荊璧隋珠] (0) | 2025.03.14 |
형고[滎皐], 형극[荊棘], 형극매동타[荊棘埋銅駝], 형담창화[荊潭唱和], 형등[螢燈] (0) | 2025.03.11 |
협탄[鋏彈], 협파개[愜爬疥], 협협균박새[挾筴均博塞], 형가[荊軻], 형경분월계[衡鏡分月桂], 형경전[荊卿傳] (1) | 2025.03.06 |
협리서호[篋裏西湖], 협상모[頰上毛], 협원[峽猿], 협주[挾鑄], 협진궁[挾秦弓] (0) | 2025.03.04 |
혈지승[穴紙蠅], 혐중육[嫌重肉], 협가[鋏歌], 협견첨소[脅肩諂笑], 협광[挾纊], 협류[峽纍] (0) | 2025.02.24 |
현화[玄花], 현훤[懸貆], 혈구지도[絜矩之道], 혈규주중도[穴竅珠中度], 혈사[血射] (0) | 2025.02.18 |
현하지변[懸河之辯], 현현[泫泫], 현호수적[懸瓠樹績], 현호일[懸弧日] (0) | 2025.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