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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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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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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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太阿] 명검의 이름이다. 오나라의 간장(干將)과 월나라의 구야자(歐冶子)가 만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당시에 저명한 대장장이였는데 초나라와 왕이 풍호자(風胡子)를 오월 두 나라에가서 간장과 구야자를 불러오게 하여 용연(龍淵), 태아(太阿), 공포(工布)라는 이름의 명검 3개를 만들게 했다. 후에 이 명검을 알게 된 진(晉)나라와 정(鄭)나라가 구하고자 했지만 초왕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두 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포위했다. 초왕이 태아를 허리에 차고 성루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하여 두 나라 군사들을 크게 물리쳤다. 태아도지(太阿倒持)라는 성어는 칼자루를 남에게 넘겨주어 그로 인해 오히려 자기가 해를 입는다는 성어다. <越絶書 外傳 記寶劍>

태아도[大阿倒] 한서(漢書) 제67권 매복전(梅福傳)에 “태아를 거꾸로 잡고 칼자루를 초(楚) 나라에 주었다.” 하였다.

태아도병[大阿倒柄] 태아는 보검(寶劍)의 이름으로 한(漢)나라 유향(劉向)의 상소(上疏)에 “태아를 거꾸로 쥐고서 칼자루를 남의 손에 쥐어 주었다.”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임금이 정권(政權)을 남에게 맡긴 데 비유한 말이다.

태아수왕씨[太阿授王氏] 태아는 칼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을 뜻한다. 왕씨(王氏)는 원제 황후(元帝皇后) 왕씨의 동생 봉(鳳). 이 사람이 권력을 잡음으로부터 외척(外戚)들이 발호하였는데, 장우(張禹)가 그들에게 아첨하였으므로 주운이 배척하였다.

태악[泰岳] 태악은 태산(泰山)이다. 송 나라 때 손복(孫復)이 태산에 은거하여 석개(石介)·문언박(文彦博)·조무택(組無擇) 등 유수한 학자를 배출하였다.

태애초수인[台崖招手人] 천태산(天台山) 벼랑으로 신선이 왕래한다는 곳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신선이 나를 사랑한다면, 손을 들고 와 부르리라.[仙人如愛我 擧手來相招]”라는 구절이 있다.

태액[太液] 한(漢) 나라 무제(武帝)가 궁궐 안에 태액지(太液池)를 팠다.

태액지[太液池] 북경(北京)의 서화문(西華門) 곁에 있는 연못 이름으로, 북해(北海), 중해(中海), 남해(南海)가 있다.

태액지[太液池] 한 무제(漢武帝)가 건장궁(建章宮)을 짓고 그 북쪽에 대지(大池)와 점대(漸臺)를 만들고 이름을 태액지라 했는데, 그 가운데에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의 세 산을 쌓아 해중 삼신산을 형상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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