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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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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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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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시용[太史是庸] 태사의 말을 받아들이다. 여기서 태사는 유왕(幽王) 때의 태사(太史)를 이른다. 이름은 영(穎), 자(字)는 석부(碩父)라는 설과 백양(伯陽)이라는 설이 있다. 정세가(鄭世家) 편에 ”낙수(洛水)의 동쪽이며 하수의 남안(南岸)에 해당하는 땅만이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대에는 괵국(虢國)과 회국(鄶國)이 있는데 그 군주들이 탐욕스럽고 이(利) 만을 밝히는 자들이라 백성들이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공께서는 사도(司徒)의 직에 계시고 백성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계시니 그곳 주변의 땅을 성심껏 청하신다면 괵국과 회국의 군주들은 공께서 주왕실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흔쾌히 그들의 봉지를 떼어 줄 것입니다. 공께서 그곳에 자리잡으신다면 괵국과 회국의 백성들은 모두 공의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주나라가 쇠하게 되면 제(齊), 당진(唐晉), 섬진(陝秦), 초(楚) 등의 나라가 흥성하게 될 것입니다. 제나라는 강성(姜姓)이며 백이(伯夷)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백이는 옛날 요(堯)임금을 도와 나라의 법도와 예절을 제정했습니다. 섬진(陝秦)은 영성(嬴姓)이며 백예(伯翳)의 후손들입니다. 백예는 순(舜)임금을 도와 많은 부락을 회유하고 귀순시켜 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초(楚)나라의 조상들도 역시 천하를 위해 큰공을 세웠습니다. 주무왕이 은주(殷紂)를 멸하고 그의 아들 성왕(成王)이 뒤를 이었습니다. 성왕이 당(唐) 땅을 그의 동생인 숙우(叔虞)에게 주어 제후로 봉했습니다. 당 땅은 산천의 지세가 험(險)하여 이 곳에서 덕 있는 후손이 태어나 주나라가 쇠퇴하게 되면 같이 병존(竝存)하게 되어 당진(唐晉)은 틀림없이 흥성(興盛)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 태사(太史) 백(伯)의 말이 실려있다.

태사의우곡여인[太史宜憂穀與人] 음력 정월 7일을 인일(人日)이라고 하여 사람의 운세를 점치고, 그 다음 날에 한 해의 곡식 농사를 점치는 풍속이 있었는데, 그날의 날씨가 좋고 나쁨에 따라 길흉(吉凶)이 갈린다고 믿었다는 기록이 동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에 나온다.

태사장유[太史壯遊] 태사공 사마천(司馬遷)을 가리킨다. 20세 무렵부터 중국 전역을 종횡무진 유력하였다. <史記 卷130>

태사주남체[太史周南滯] 한 무제(漢武帝)가 태산(泰山)에 처음 봉선(封禪)을 할 때, 태사공 사마담(司馬談)이 주남 땅에 응체(凝滯)되어 있어 이 일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태사하거서[太史河渠書] 태사공은 한(漢) 나라 때 태사령(太史令)을 지낸 사마천(司馬遷)을 말하고, 하거서는 사마천의 사기의 편명으로서 천하의 강과 도랑에 대하여 그 하공(河工)과 수리(水利) 등의 일을 기록한 것이므로 이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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