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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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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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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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泰山] 북송(北宋) 초기에 손복(孫復)이 태산에 은거하여 문도를 모아 가르치고 글을 저술하여 특히 춘추(春秋)를 전문으로 가르쳤는데, 세상에 널리 이름이 나서 ‘태산하손명복선생(泰山下孫明復先生)’이라 불렸다.

태산[泰山] 중국 제일의 명산. 산동성(山東省)의 태안(泰安)에 있는 오악(五嶽) 중의 하나인 동악(東嶽)으로, 중국에서는 옛부터 태산을 성산(聖山)으로 추앙해 왔다. 도교의 영지(靈地)이다.

태산가[太山歌] 태산이 무너지고 철인(哲人)이 죽었다 하며, 큰 인물의 죽은 것을 슬퍼하는 말이다.

태산곡자[泰山哭子] 사나운 정사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움. 공자가 태산을 지나는데 어느 여인이 무덤 앞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제자를 시켜 우는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자기 시아버지와 남편과 자식이 모두 호랑이에게 죽었다는 것이었다. 왜 떠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태산 속에는 가정(苛政)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자가 이르기를 “소자(小子)들아, 잘 기억해 두어라, 가정은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孔子家語>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울고 움직이더니 쥐 한 마리가 나옴. 무엇을 크게 떠벌리기만 하고 실제의 결과는 작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태산북두[泰山北斗] 태산(泰山)과 북두성(北斗星)이란 뜻에서, 남에게 존경을 받는 뛰어난 인물.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경받는 뛰어난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태두(泰斗). 산두(山斗).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태산은 작은 흙덩어리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큰 산이 되었다는 뜻으로, 도량이 매우 넓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사람으로 순경(荀卿)을 섬기면서 제왕의 통치술을 익힌 후,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초나라를 떠나 진(秦)나라로 갔다. 마침 진나라 장양왕(莊襄王)이 죽자, 이사는 진나라의 승상 여불위(呂不韋)의 가신(家臣)이 되었다. 여불위는 그를 신임하여 시위관(侍衛官)에 임명하였다. 이후 이사는 진나라 왕에게 유세할 기회를 얻어 큰 신임을 얻게 되어 객경(客卿)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한(韓)나라에서 온 정국(鄭國)이라는 자가 논밭에 물을 대는 운하를 만든다는 명목하에 진나라의 인력과 자원을 소비시켜 동쪽 정벌을 포기하게 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이 일어나자, 왕족과 대신들은 모든 빈객을 축출하자고 들고일어났고, 이사 역시 그 대상에 들었다. 이에 이사는 상소를 올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아지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으며, 병력이 강하면 병사가 용감해진다고 합니다. 태산은 본디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으므로[泰山不辭土壤] 그렇게 높을 수 있으며[故能成其大],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으므로[河海不擇細流] 그 깊음에 이른 것입니다[故能就其深]. 마찬가지로 왕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음으로써 그 덕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뜻을 전하였다. 이 상소문을 읽고 진나라 왕은 빈객들을 축출하지 않았다. <史記 李斯列傳>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대인은 도량이 넓어서 뭇사람을 다 포용한다는 뜻이다. 진(秦)나라 이사(李斯)의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에 “태산은 조그마한 흙덩어리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거대해질 수가 있는 것이고, 황하와 바다는 가느다란 물줄기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깊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라고 한 데서 보인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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