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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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조제[雕題] 먹실로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것으로, 남만의 풍속이다.
❏ 조제[雕題] 오랑캐를 가리킨다. 조제는 이마에 문신을 하는 서융(西戎)의 풍습을 말한다.
❏ 조제모염[朝薺暮鹽] 냉이와 소금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몹시 빈곤한 생활을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당(唐)나라 한유(漢愈)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이라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의 일들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의인화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하였다. 가난 귀신이라는 궁귀는 한참 있다가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않았으며, 선생님께서 남쪽으로 귀양갔을 때, 저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아침에는 냉이나물을 먹고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大學四年 朝薺暮鹽), 오직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 조조[懆懆] 근심하여 마음이 편하지 못한 모양.
❏ 조조[調刁]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대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사나운 바람이 한차례 지나고 나면 나무의 뭇 구멍들이 텅 비게 되는데, 그럴 때에도 그대는 나뭇가지들이 여전히 크고 작게 간들거리는 모습을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厲風濟則衆竅爲虛 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라는 구절이 있다.
❏ 조조[慥慥] 독실한 모양, 성의있는 모양.
❏ 조조[朝朝] 매일 아침.
❏ 조조[刁刁]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모양, 가볍게 흔들리는 모양.
❏ 조조[嘈嘈] 소리의 시끄러운 모양.
❏ 조조[嬥嬥] 오가는 모양, 홀로 걸어가는 모양, 아리따운 모양.
❏ 조조[早早] 일찍, 빨리.
❏ 조조[條條] 조리가 서 있는 모양, 헝클어지는 모양, 슬기가 있는 일.
❏ 조조[佻佻] 혼자가는 모양, 경박하고 노고를 헤아리지 않는 모양, 근심과 괴로움이 절박한 모양.
❏ 조조[嘲嘲] 희롱하는 모양.
❏ 조조[晁錯] 기원전 200년에 태어나서 154년에 죽은 서한의 대신으로 영천(潁川) 출신이다. 영천은 지금의 하남성 우현(禹縣)이다. 조조(朝錯) 혹은 조조(鼂錯) 등으로도 표기한다. 어렸을 때 장회(張灰)에게 신불해(申不害), 상앙(商鞅) 등의 형명학(形名學)을 배웠다. 문제 때 문학으로 천거되어 태상장고(太常掌故)가 되어 진나라 때 박사를 지냈던 복생(伏生)으로부터 상서(尙書)를 구술 받아 정리했다. 후에 태자사인(太子舍人), 문대부(門大夫), 박사(博士), 태자가령(太子家令) 등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태자유계(劉啓: 후의 경제(景帝))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았다. 그는 흉노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하면서 수차에 걸쳐 관병사소(官兵事疎), 수변권농소(守邊勸農疎), 모민실색소(募民實塞疎) 등의 상소를 올렸다. 문제는 농민들을 변경으로 이주시켜 국경을 지켜야 한다는 조조의 상소를 허락했다. 문제 12년 기원전 168년, 다시 논귀속소(論貴粟疎)와 감수농민조세(減收農民租稅)라는 제목의 상소를 올려 농민들이 곡식을 바치면 작위를 내리고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문제가 받아들여 시행하고 더불어 당해 년의 조세 중 절반을 면제한다는 조칙을 내렸다. 경제가 즉위하자 내사(內史)로 자리를 옮겨 많은 법령을 개정하고 정비했다. 경제 2년 기원전 155년 어사대부가 되어 제후왕들의 봉지를 줄여야 한다고 건의하면서 지적하기를 “지금 제후왕들의 영지를 깎아도 반란이 일어날 것이며 깎지 않아도 반란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봉지를 깎으면 반란을 앞당겨 일어나게 해서 그 화는 적을 것이며 깎지 않는다면 반란을 늦게 일어날 것이지만 그 화는 다.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경제가 조조의 계책을 받아들여 시행하자 얼마 후에 오초칠국(吳楚七國)이 군왕의 측근에 있는 간신을 제거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다. 조조의 정적 원앙(袁盎)의 계책을 받아들인 경제가 조조를 처형하고 그 가족들을 멸족시켜 제후들의 반란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한서 예문지(藝文志)에 그의 저서 31편을 기재했다고 했으나 지금은 8편 일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행적은 한서 조조전(鼂錯傳), 식화지(食貨志), 형연오전(荊燕吳傳)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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