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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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유공[庾公] 유공은 진(晉) 나라 유량(庾亮)을 가리킨다. 그가 무창(武昌)을 다스릴 때 부하 관원들과 술자리를 함께하며 남루(南樓)에서 달구경을 했던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容止>
❏ 유공간[劉公幹] 공간은 삼국 시대 위(魏) 나라의 문인 유정(劉楨)의 자(字)이다.
❏ 유공객[遊邛客] 임공에 노는 손이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상여는 젊었을 때에 독서하기를 좋아하여 문장이 뛰어났는데, 뒤에 임공에 와 있자 왕길은 무척 존경하였다. 그리하여 임공의 부호였던 탁왕손(卓王孫)의 연회에 함께 초대되었는데, 이때 마침 탁왕손의 딸인 문군(文君)이 새로 과부가 되어 집에 있다가 상여에게 반하여 마침내 그를 따라 밤에 도망하였다. <漢書 司馬相如傳>
❏ 유공루[庾公樓] 유공루는 중국 강주(江州)에 있던 누각 이름인데, 진(晉) 나라의 유량(庾亮)이 강주・형주(荊州)・예주(豫州)의 자사가 되어 무창(武昌)을 다스릴 때 고을 관리 은호(殷浩)・왕호지(王胡之) 등과 남루(南樓)에 올라가 달구경을 하며 밤이 새도록 담소하였다 하여 나중에 호사자(好事者)들이 그곳에 누각을 세우고 유공루라 이름하였다 한다. <晉書 卷七十三 庾亮傳>
❏ 유공은배[柳公銀杯] 유공은 당(唐) 나라 유공권(柳公權). 그는 일찍이 술잔 한 상자를 보관하여 두었는데, 포장하여 표지를 붙인 상자는 그대로 있으나 술잔은 다 없어져버렸다. 그런데 종들의 말이 요망하여 종잡을 수가 없자, 공권은 웃으면서 “은술잔이 신선이 되어 가버렸는가 보다.”라 하고, 다시는 힐문하지 않았다. <唐書 柳公權傳>
❏ 유공진[庾公塵] 유공(庾公)은 곧 진(晉) 나라 유량(庾亮)을 가리킨 말이다. 왕도(王導)는 유량의 권세가 너무 중한 것을 미워하여 항상 서쪽 바람이 불 때면 부채로 낯을 가리고 “원규(元規)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라 하였다. <晉書 卷六十五 王導傳>
❏ 유공진[庾公塵] 진(晋) 나라 왕도(王導)가 유량(庾亮)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유량은 무창(武昌)에 있었다. 서풍(西風)이 불 때마다 왕도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우며 “원규(元規)의 먼지가 사람을 더럽히네.”라고 하였다. 무창이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 유공흥[庾公興] 유공은 진(晉)의 유량(庾亮)을 말한다. 유량이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무창(武昌)에 있을 때 자기 부하 무리들이 가을 달밤에 남루(南樓)에 올라가 놀고 있었다. 유양이 거기를 오자 모두 일어나 피해가려고 하므로 유양이 나직이 말하기를 “그대들 조금 더 있게. 늙은 이 사람도 여기 오니 흥이 보통이 아닐세.”라 하고 함께 어울려 담소하였다고 한다. <晉書 卷七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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