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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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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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준[袁準] ()의 학자. 자는 효니(孝尼)이다.

원중랑[袁中郞] 명대의 시문가. 이름은 굉도(宏道), 호는 석공(石公). 형 종도(從道)아우 중도(中道)와 재명(才名)을 날려 삼원(三袁)이라 불렸다. <明史 卷二百八十八, 明詩宗 卷五十七>

원중승[袁中丞] 중승(中丞)은 명대(明代)의 관직으로 순무(巡撫)를 말하는데, 요동 순무사(遼東巡撫使)로 재직했던 원숭환(袁崇煥)을 가리킨다. <明史 卷259燃藜室記述 卷25 毛文龍誅死>

원중종죽개삼경[園中種竹開三逕] 은거한 것을 말한다. 삼보결록(三輔決錄)장허(蔣詡)의 자는 원경(元卿)인데 집안에 대나무를 심고 그 아래에 세 갈래 길을 만들었으며, 오직 구중(求仲), 양중(羊仲)이 따라다니며 놀았다.”라고 하였다.

원지[遠志]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 나라 환온(桓溫)이 원지 소초(遠志小草)라는 약초의 뜻을 묻자, 학륭(郝隆)산속에 있을 때는 원지라고 부르고 세상 속으로 나왔을 때는 소초라고 부른다.”고 대답하여 사안(謝安)을 부끄럽게 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排調>

원진[元稹] 당 나라 시인.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시를 잘 지었으므로 궁중(宮中)에서 원재자(元才子)라 했고, 백거이(白居易)와 같이 이름이 높아 원백(元白)이라 일컬어졌으며, 또 그들의 시체를 원백체(元白體)라 한다. 저서에는 원씨장경집(元氏長慶集)이 있다.

원진[元鎭] 원진은 송 나라 때의 충신 조정(趙鼎)의 자(). 과거의 책문(策文)에서 장돈(章惇)의 실정(失政)을 비판했고, 송 나라가 남천(南遷)한 뒤로는 나라의 부흥을 위해 진력하다가 간신 진회(秦檜)와 뜻이 맞지 않아 귀양가서 음식을 먹지 않고 자결하였다. 진회를 비롯한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여러 차례 좌천되었다가 사직하는 표문(表文)에서 흰 머리 늙은 몸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서글픕니다. 단심(丹心)은 아직도 남았으니, 아홉 번 죽더라도 변치 않으리라 맹서합니다.”라고 하였다. <宋元學案 卷四十四>

원진단심[元鎭丹心] 원진은 송 나라 때의 충신 조정(趙鼎)의 자(). 과거의 책문(策文)에서 장돈(章惇)의 실정(失政)을 비판했고, 송 나라가 남천(南遷)한 뒤로는 나라의 부흥을 위해 진력하다가 간신 진회(秦檜)와 뜻이 맞지 않아 귀양가서 음식을 먹지 않고 자결하였다. 진회를 비롯한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여러 차례 좌천되었다가 사직하는 표문(表文)에서 흰 머리 늙은 몸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서글픕니다. 단심(丹心)은 아직도 남았으니, 아홉 번 죽더라도 변치 않으리라 맹서합니다.”라고 하였다. <宋元學案 卷四十四>

원진사[蚖珍詞] 원진은 계절과 달에 따라 구분되는 여덟 종류의 누에치기 명칭 가운데 하나로, 3월에 치는 것을 말한다. ()자는 본디 두 잠을 잔 누에라는 뜻인데 원()자에 붙어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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