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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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원우간당비[元祐奸黨碑] 원우 연간인 송 나라 철종(哲宗) 때 당론(黨論)이 아주 심하여 사마광(司馬光)을 중심으로 한 문언박(文彦博), 소식(蘇軾), 정이(程頤), 황정견(黃庭堅) 등의 구파(舊派)와 왕안석(王安石)을 중심으로 한 채경(蔡京), 증포(曾布) 등의 신파(新派)가 심하게 대립하였는데, 휘종(徽宗) 때에 이르러 채경 등이 용사(用事)하면서 구파를 당인으로 몰아 태학문(太學門) 앞에다가 사마광 등 309명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우고는 당인비(黨人碑)라고 하였다.
❏ 원우간비[元祐姦碑] 원우는 송 철종(宋哲宗) 연호. 당시에 사마광(司馬光)을 필두로 하여 정이(程頤)・문언박(文彦博) 등 문인 학자 1백여 명이 한 무리가 되어 왕안석(王安石)의 신당(新黨)과 격렬한 대립을 보여왔는데, 그 후 휘종(徽宗) 대에 와서 증포(曾布)・채경(蔡京) 등이 이상의 문인 학자들을 원우간당(元祐姦黨)으로 몰아 단례문(端禮門)에다 원우간당비를 돌에 새겨 세웠다. <元祐黨人傳>
❏ 원우죄인[元祐罪人] 원우는 송 철종(宋哲宗)의 연호인데, 원우의 죄인이란 소식을 말한다. 소식이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였으므로 숭령(崇寧) 원년에 채경(蔡京)이 사마광(司馬光)의 구당(舊黨) 1백 2십 명을 간당(奸黨)이라 지목하고 비를 세웠다.
❏ 원우퇴설루[袁尤槌雪樓] 원굉도는 바로 명(明) 나라 때의 시인이고, 설루(雪樓)는 역시 명나라 때의 시인 이반룡(李攀龍)의 서실(書室) 이름인 백설루(白雪樓)의 준말이다. 원굉도는 본디 시문에 뛰어난 사람으로서 그의 형인 종도(宗道), 아우인 중도(中道)와 함께 모두 당대에 명성이 높았는데, 그는 특히 왕세정(往世貞)과 이반룡의 시체(詩體)를 매우 강력히 배격하고 홀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당대에 많은 학자들이 왕세정・이반룡을 배제하고 그를 따르면서 그의 시체를 공안체(公安體)라 지목했던 데서 온 말이다. <明史 卷二百八十八>
❏ 원원[湲湲] 물고기가 기운을 잃고 넘어지는 모양이다.
❏ 원원[源源]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모양, 사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 원원[晼晼] 해가 뉘엿뉘엿 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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