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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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대장군 한신이 조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나라 왕과 성안군 진여는 20만 대군을 정형에 집결시키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이때, 조나라 왕의 모사인 광무군 이좌거가 성안군에게 건의하였다.
“한신의 군대가 진을 구축하기 전에 정예부대 3만을 보내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앞뒤에서 협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성안군은 공부만 해온 선비 출신이었기 때문에, 속임수나 떳떳하지 못한 계책을 쓰려하지 않았다.
한신은 첩자를 시켜 조나라 진영의 동정을 알아보게 한 후, 성안군이 광무군의 계책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였다. 한신은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군사들을 이끌고 조나라 땅으로 들어가, 조나라 군대가 집결해 있는 정형에서 30리쯤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
한밤이 되자, 한신은 출동 준비 명령을 내렸다. 이미 선발된 2천 명의 날렵한 무장 기병들에게 붉은 깃발 하나씩을 나누어 주고, 샛길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 조나라 진영이 잘 보이는 곳에 숨어있으라고 작전 지시를 한 다음, 이렇게 당부하였다.
“조나라 군대는 우리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면 성벽의 수비를 비워두고 우리를 추격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신속하게 성벽에 침입하여 조나라 군대의 깃발을 뽑아 버리고 우리 한나라의 붉은 깃발로 바꿔 세우도록 하여라. 오늘 조나라를 쳐부순 후에 배부르게 먹어 보도록 하자.”
이와 별도로 한신은 정예병 1만 명을 선발하여 먼저 정형의 입구에서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였다. 조나라 군사들은 멀리서 한신 군대의 이러한 진법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날이 밝을 무렵, 한신은 군사들을 이끌고 진격하였다. 쌍방 간에 격전이 벌어졌다. 잠시 후, 한나라 군사들이 패주를 가장하여 강가에 쳐놓은 진영으로 퇴각하자, 조나라 군사들은 본진을 벗어나 한나라 군사들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한신은 주력 부대의 출전을 명령하였고, 배수의 진을 친 병사들은 더 이상 도망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맹렬하게 조나라 군사들과 싸웠다. 조나라 군사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한나라 군사들을 물리치지 못하게 되자, 진영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성벽 위에는 온통 붉은 한나라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이를 본 조나라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모두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한나라 군사들은 성안군을 죽이고, 조나라 왕을 사로잡았다. 한신은 붙잡혀 끌려온 광무군을 풀어주고 그를 자신의 스승으로 모셨다.
전투가 끝난 후, 한신은 모든 장군들과 함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를 베풀었다. 어떤 장군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서 말하길, ‘진을 칠 때에는 산이나 언덕을 오른편에 두거나 뒤에 두어야 하고, 강과 연못은 앞이나 왼편에 두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저희들에게 강물을 뒤에 두고 진을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무슨 전술입니까?”
한신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군들, 이것도 병법에 있는 것인데, 그대들이 주의해서 보지 않았던 것뿐이오. ‘사지에 몰아넣은 후에야 살게 되고, 망할 지경이 되어서야 존재하게 된다’라고 병법에서 말하지 않았소? 이번 전투는 길거리에 있는 백성들을 몰아다가 싸우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이런 형세에서는 그들을 사지에 몰아넣어 스스로 싸우게 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는 곳에 있게 하였다면 모두 달아나 버렸을 것이오.”
장군들은 한신의 말에 탄복하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한신은 고개를 돌려 광무군에게 물었다.
“북쪽 연나라를 정벌하려는데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광무군은 대답을 삼가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전투에서 패한 장수는 용맹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의 존립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패망한 나라의 포로인 제가 어찌 감히 대사를 말하겠습니까?”
한신은 다시 간청하였다.
“저는 정성을 다하여 그대의 계책에 따를 것이니,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광무군은 말을 시작하였다.
“저는 ‘지혜로운 자라도 천 번 생각하여 한 번의 실수가 있을 수 있으며, 어리석은 자라도 천 번의 생각 가운데 한 번쯤은 좋은 계책을 낼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친 사람의 말에서라도 성인은 고를 것을 골라 취한다’라고 했습니다. 저의 계책이 받아들여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으나, 어리석은 저의 충성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신이 광무군 이좌거의 계책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니, 과연 연나라는 투항하고 말았다.
그 후 광무군 이좌거는 한신의 참모가 되어 크게 공헌하였다.
<史記사기 /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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