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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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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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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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閭社] 마을.

여사[餘事] 정치하는 여가에 글을 하므로 여사(餘事)라 하였다.

여산[廬山]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 남쪽에 있는 유명한 산으로 경치가 아름답고 그 남쪽에 아홉 줄기의 폭포가 있다 한다. 송 나라 때 주희(朱熹)가 남강군(南康軍)의 수()가 되어서 직접 학규(學規)를 만들어 이곳에서 강학(講學)하였다. <讀史方輿紀要 江西名山>

여산[廬山] 여산은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에 있는 산으로, 동진(東晉) 때 고승(高僧) 혜원(慧遠)이 여기에 동림사(東林寺)를 세우고 혜영(慧永), 뇌차종(雷次宗) 18인과 백련사(白蓮社)를 결사(結社)하였으며, 고사(高士) 도잠(陶潛)이 여기에 은거하기도 하였다. 백거이 또한 낙양 동쪽의 향산에 많이 거처하여 보통 향산거사(香山居士)로 불리지만 여산의 초당에서 밤비 소리를 들으며 홀로 묵다.[廬山草堂夜雨獨宿]”라는 등 여산의 추억을 담은 시도 적지 않다.

여산[呂産] 여태후의 큰오빠 여주(呂周)의 차자. 혜제 원년 기원전 194년 교후(交侯)에 봉해졌다. 여태후 6년 기원전 182년 여왕(呂王)에 봉해졌다. 여태후에 의해 도성의 남군을 관장하는 장군에 임명되고 다시 여태후가 죽자 여록과 함께 란을 일으켰으나 주발과 진평에 의해 살해되었다.

여산대하[礪山帶河] 공신(功臣)을 봉()해 주는 맹세의 말인데 황하의 물이 띠[]와 같이 줄고, 태산이 숫돌같이 작게 되도록 영원히 서로 나라를 보전하여 후손에게까지 미치게 하자.”는 것이다.

여산동작구[驪山銅作柩] 진시황(秦始皇)이 죽자 여산(驪山)에 장사지냈는데, 이때 구리로 널을 만들었다. <史記 卷六 秦始皇本紀>

여산백련사[廬山白蓮社] 불교 정토종(淨土宗)의 최초 결사(結社), 동진(東晉)의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여산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승인(僧人)과 속인(俗人) 18명을 모아 염불하는 결사를 맺고서는 백련사(白蓮社)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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