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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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양교[陽橋] 설원이정(說苑理政)에 의하면, 양교(陽橋)라는 물고기는 생김새가 얇고 맛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 양교[楊喬] 후한 환제(後漢桓帝) 때의 정치가. 자는 성달(聖達). 환제가 그를 부마(駙馬)로 삼으려 했으나, 끝내 듣지 않고 굶어 죽었다. 벼슬이 상서(尙書)에 이르렀다.
❏ 양구[陽九] 술수가(術數家)의 설에서 4617년을 일원(一元)이라 하는데, 시작되어 106년이 될 때까지의 사이에 9년의 한재(旱災)가 드는바, 이를 ‘양구’라 한다. 또 태을수(太乙數)에서 456년을 양구, 288년을 백륙이라고 하는데, 도가에서는 하늘의 재앙을 양구, 땅의 붕괴를 백륙이라 한다. 곧 험난한 세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 양구[羊裘] 양구는 양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인데, 후한(後漢) 때 은사 엄광(嚴光)이 양구를 입고 늪에서 낚시질하며 은거(隱居)했던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은사의 옷을 뜻한다. <後漢書 逸民傳 嚴光>
❏ 양구[羊求] 양구는 한 애제(漢哀帝)때 단정하고 청렴하기로 이름난 양중(羊仲)과 구중(求仲)의 병칭(竝稱)이다. 당시에 그들의 벗 장후(蔣詡)가 왕망(王莽)이 섭정을 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외부와 통하는 길 세 가닥을 터놓고 하나는 자기가, 나머지는 그들이 각기 다니는 길로 삼아 서로 왕래하며 살았다 한다. 삼보결록(三輔決錄)에 “장허(蔣詡)……집 가운데 세 오솔길에서 양중과 구중만이 그를 따라 놀았다.”라고 하였다.
❏ 양구수견자릉피[羊裘須遣子陵披] 엄자릉(嚴子陵)처럼 숨는다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 엄광전(嚴光傳)에 “황제가 어려서 엄광과 함께 배웠으므로 황제가 되매 물색(物色)으로 찾으니 얼마 후 제국(齊國) 땅에 어느 남자가 염소 가죽옷을 입고 못가에서 낚시한다고 아뢰는 사람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 양구일백륙[陽九一百六] 술수가(術數家)의 설에서 4617년을 일원(一元)이라 하는데, 시작되어 106년이 될 때까지의 사이에 9년의 한재(旱災)가 드는바, 이를 ‘양구’라 한다. 또 태을수(太乙數)에서 456년을 양구, 288년을 백륙이라고 하는데, 도가에서는 하늘의 재앙을 양구, 땅의 붕괴를 백륙이라 한다. 곧 험난한 세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 양구자[羊裘子] 염소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사람. 한(漢)의 엄광(嚴光)을 말한 것으로 엄광은 자기 학우(學友)였던 무제(武帝)가 제위(帝位)에 오르자 변성명을 하고 세상에 숨어 양피로 된 옷을 입고 여울 가에서 고기를 낚으며 일생을 마쳤다. <漢書 嚴光傳>
❏ 양구재액[陽九災厄] 1백 6년마다 찾아오는 재액으로서 기막힌 불운(不運)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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