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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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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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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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음서[百里音書] 가까운 지역에서 보내 온 소식을 말한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백리의 음서가 어찌하여 이토록 늦게야 도착했는가, 늦은 봄에 지은 시를 늦가을에야 받아 봤네[百里音書何太遲 暮秋把得暮春詩]”라는 구절이 있다. <白樂天詩集 卷15 渭村酬李二十見寄>

백리인성용철상[百里仁聲舂輟相] 백리해는 우() 나라의 현신이었는데, 우 나라 임금을 버리고 진() 나라로 가서 목공(穆公)을 섬김으로써 오고대부(五羖大夫)가 되었다. 조량(趙良)이 상앙(商鞅)에게 이르기를 오고대부(五羖大夫)가 죽고 나자, () 나라 백성들이 눈물을 흘렸고 방아를 찧던 자들이 절구질을 하지 않았다.”라 하였다. <史記 卷六十八 商君列傳>

백리잠우구[百里潛牛口] ()의 대부(大夫)백리해(百里奚)가 초()나라 사람에게 붙잡혀 있을 때 진 목공(秦穆公)이 그의 어짊을 듣고 자기 나라 정사를 그에게 맡기기 위하여 염소 가죽 다섯 장으로 그의 죗값을 물고 데려와 국정을 맡겼는데, 그 말이 와전되어 백리해 자신이 진 목공을 만나기 위하여 염소 가죽 다섯 장에 몸을 팔아 남의 소 먹이 노릇을 하였다고 한다. <孟子 萬章上>

백리재[百里才] 지방 장관 또는 현령(縣令)의 별칭이다. 유비(劉備)가 처음에 방통(龐統)을 뇌양(耒陽)의 현령으로 발령하였는데, () 나라의 노숙(魯肅)이 이 소문을 듣고 편지를 보내기를 그는 백리재(百里才)가 아니니 조정에 불러와서 천리마(千里馬)의 재질을 펼치도록 해야 한다.”라고 한 고사가 있다. <三國志 蜀志 龐統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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