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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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대가[代加] 벼슬의 자급을 올리는데 있어 부형의 벼슬이 자궁(資窮)인 통훈대부(通訓大夫)가 되어 친히 은전을 받지 못하므로 그 자제(子弟)에게 대신 주는 것을 대가(代加)라 한다.
❏ 대가[大家]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는 자가 임금을 일컬을 때 하는 말이다. 태후(太后) 또는 황후(皇后)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 대가[待價] 자공이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사온데, 궤 속에 감춰 두어야겠습니까. 좋은 값을 얻고 팔아야겠습니까.”라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팔고말고, 팔고말고, 그러나 나는 값을 기다리는 자이로라.”라 하였다. <논어(論語)>
❏ 대간무[戴竿舞]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임금이 근정루(勤政樓)에 올라 풍악을 갖추고 온갖 기예(技藝)를 벌이게 했는데, 여우(女優) 대랑(大娘)이 대간무를 잘 추었다. 즉, 머리 위에 긴 장대를 이고 목상(木床)을 올려놓은 다음 여러 어린애가 붉은 절모(節旄)를 들고 그 위에 올라서면 춤을 추어 음절(音節)을 맞춘다.”라 하였다.
❏ 대간사충[大姦似忠] 악한 사람이 본성을 숨기고 충신처럼 보인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정말로 간사한 사람은 언사가 교묘하여 누구라도 충신이라고 믿게 만든다는 말이다. 송나라 영종(英宗)의 뒤를 이은 신종(神宗)은 영종이 이루지 못한 개혁을 계속 진행시켰는데, 어린 신종을 도와 개혁을 추진한 인물이 왕안석(王安石)이다. 왕안석은 신종의 신임 아래 기존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법을 공포하였다. 그러나 이 법은 기득권을 가진 지주와 부호, 황실, 귀족 관료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가진 자로부터 없는 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의 재편을 노린다는 구실이었다. 그 맨 앞에 선 사람이 어사중승(御史中丞) 여회(呂誨)였다. 여회는 왕안석이 재상에 취임하는 것부터 반대했던 사람으로, 신법이 계속 만들어지자 마침내 신종에게 왕안석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는 “아주 간사한 사람은 충신과 비슷하고, 큰 속임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든다[大姦似忠 大詐似信]”고 하면서, 겉으로는 질박하게 보이면서도 가슴 속에는 간사한 음모가 있으며, 교만하고 음험하여 황실을 업신여기고 남을 해치려 하는 간특한 인간이라고 왕안석을 탄핵하였다. 그 후에도 신종은 왕안석에 대한 신임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여회를 지방으로 좌천시키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종이 죽고, 왕안석도 물러나 은퇴하자 보수 반동 세력이 다시 득세하여 개혁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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