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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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당무백도아[堂無伯道兒] 뒤를 이을 자식이 없는 것을 말한다. 백도(伯道)는 진(晉) 나라 등유(鄧攸)의 자이다. 등유가 하동 태수(河東太守)로 있을 적에 석늑(石勒)의 난을 만나 자기 아들과 동생의 아들을 데리고 피난하였는데, 도중에 적을 만났다. 등유는 두 아이를 다 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여겨 자기의 아들은 버리고 동생의 아들만 살렸는데, 그 뒤에 끝내 후사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의 행실을 의롭게 여기면서 슬퍼하여 “천도가 아는 것이 없어서 백도로 하여금 아들이 없게 했다.”라고 하였다. <晉書 卷90 良吏列傳 鄧攸>
❏ 당무후[唐武后] 당 고종(唐高宗)의 황후인 측천무후(則天武后)를 말한다. 고종이 죽자 자기 아들 중종(中宗)을 세웠는데 마음에 맞지 않았으므로 폐위시키고 둘째 아들 예종을 세웠다. 그러나 곧 폐위시키고 자신이 정권을 휘두르면서 국호(國號)를 주(周)라 고치고 요직(要職)에 친족을 앉혔으나, 뒤에 장간지(張柬之) 등에 의하여 폐위되었다.
❏ 당반환제마[唐班煥制麻] 당나라에서는 대관 임명장은 누른 마지(麻紙)를 썼다.
❏ 당발[棠茇] 당발은 감당나무 아래에 있는 초막이란 말로, 주(周) 나라 때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친 소공을 가리킨다. 주 나라 때 소공(召公)이 북연(北燕)에 봉해져서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쳤는데, 소공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소공을 그리워해 감당나무를 감히 베지 못하면서 감당지시(甘棠之詩)를 지어 기렸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발사(茇舍)는 그때 소공이 임시로 집짓고 일을 보던 초막(草幕)이다.
❏ 당발[棠茇] 당발은 주(周) 나라 소공(召公)이 머물러 쉬었던 감당(甘棠)나무를 말하는데, 시경(詩經) 소남(召南) 감당(甘棠)의 “무성히 자란 감당나무, 자르거나 베지 말라. 우리 소백께서 쉬셨던 곳이니라.[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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