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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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당돌서시[唐突西施] 당돌한 서시라는 뜻으로, 꺼리거나 어려워함이 없이 올차고 다부진 서시라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중국 동진(東晉) 초인 원제(元帝) 때 주의(周顗)라는 신하가 있었다. 친구인 유량(庾亮)이 어느 날 그에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고결하기가 악광(樂廣)과 비교된다면서 칭송한다는 말을 하자 그는 “무염(無鹽)은 천하의 추녀이며 서시(西施)는 천하절색의 미녀라는 것은 갓난아이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친구들이 나를 만약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악광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무염을 서시와 비교하는 것과 같은 짓이다. 어찌 무염에게 화장을 시켜 서시와 비교하려 하는가[何乃刻畵無鹽 唐突西施]?”라고 말하였다. <진서(晉書)>
❏ 당동벌이[黨同伐異] 도리와는 관계없이 자기와 같은 패의 사람은 덮어놓고 돕고 자기와 다른 패의 사람은 물리침을 말한다. 후한 때에는 화제(和帝) 이후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므로 황태후가 섭정이 되었고, 황태후의 친인척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후일 장성한 황제는 이들의 전횡을 탐탁찮게 여겨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우고 이들을 제거해 나가는데, 그 중심이 된 세력이 바로 환관이었다. 환관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에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집단의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하였다. 유교적 교양을 쌓은 예비 관료 집단인 선비들이 환관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선비 집단과 외척, 환관 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정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하게 되었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당동벌이이다.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은 외척과 선비 집단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 결과로 지식인 관료 집단인 선비 집단이 황실을 버림으로써 후한이 자멸하게 되었다. <후한서(後漢書) 당동전(黨同傳)>
❏ 당랑가경와가식[螳螂可敬蛙可式] 앞발을 들어 수레를 막는 사마귀와 우물 안에서 뛰어노는 개구리가 힘이 미약하고 소견이 좁기는 하지만, 강한 적에 대항하는 의기와 양양자득한 뜻은 높이 살 만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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