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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왕[秦惠王] 기원전 337년 재위에 올라 311년에 죽은 진나라의 군주다. 태자시절 사부(師傅) 공자건(公子虔)과 공손가(公孫賈)의 사주를 받아 고의로 상앙(商鞅)이 시행하고 있던 신법을 범했다. 이에 상앙은 그의 사부들을 잡아 죄를 물었다. 효공의 뒤를 이어 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른 혜왕은 상앙을 반역죄로 몰아 거열형에 처했으나 상앙이 시행하던 신법은 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외확장과 내정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수차에 걸쳐 위()나라를 공격하여 황하 이서 지역의 위나라 령의 하서(河西) 지구를 수복하고 계속해서 진군하여 북쪽의 상군(上郡)을 점령했다. 사마착(司馬錯)의 건의를 받아들여 촉(), (), () 등의 나라를 멸하고 진나라의 영토에 편입시켜 진나라의 국력을 획기적으로 신장시켜 후에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데 기반을 마련했다. ()와 초() 두 나라가 합종을 행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려고 하자 장의를 초나라에 파견하여 600리의 땅을 할양한다고 속임수를 써서 초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와의 우호관계를 끊게 만들었다. 이어서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진나라를 공격하자 단양(丹陽)과 남전(藍田)2차에 걸친 싸움에서 초군을 대파하고 초나라 령이었던 한중(漢中)의 땅 600리를 점령했다. 초나라를 이로써 국세가 기우러지기 시작하여 후에 결국은 수도를 진나라에 빼앗기고 나라를 지금의 하남성 진현(陳縣)으로 옮겨야 했다.

진홍[眞紅] 옛 제도에 4()은 홍정(紅鞓)을 띠나 가홍(假紅)이라 이르고, 3품을 진홍이라 이른다.

진홍멱부처[眞汞覓夫妻] 도가에서 심신을 수련하는 한 방법이다. 진홍(眞汞)은 주사(硃砂)에서 나오는 수은으로 단약(丹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라고 하며, 부처는 남편과 아내로 곧 음양을 뜻한다. 참동계(參同契) ()납과 수은이 서로 교제하여 부부를 맺는다.”고 하였다.

진화[秦火] () 나라 때 책을 불태운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을 말한다. 진시황(秦始皇) 때 사람들이 정치에 대하여 비평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천하의 시서(詩書) 및 백가(百家)의 서책들을 모두 모아 불태웠으며, 선비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진화[陳澕] 호는 매호(梅湖)로 뛰어난 문장가인데, 이규보(李奎報)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벼슬은 지공주사(知公州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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