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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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진황[秦皇] 진시황(秦始皇). 이름은 정(政). 만리성(萬里城)을 쌓을 때에 신편(神鞭)으로 돌을 몰아들였다 한다.
❏ 진황[秦黃] 황정견(黃庭堅)과 진관(秦觀)은 북송(北宋) 말의 시인인데, 황은 이른바 강서시파(江西詩派)를 개창한 자이며 진관, 장뢰(張耒), 조보지(晁補之), 진사도(陳師道)와 더불어 소동파의 시법을 이었다 하여 소문(蘇門)이라 불렸다.
❏ 진회[軫懷] 애통하다. 가슴 아프다.
❏ 진회[秦灰] 진 시황(秦始皇)이 시서(詩書)와 백가어(百家語)들의 책을 모두 불살랐으므로, 그 재[灰]를 말한 것이다.
❏ 진효공[秦孝公] 기원전 381년에 태어나서 전 338년에 44세로 죽은 전국시대 때 진나라의 군주다. 영성(嬴姓)에 이름은 거량(渠梁)이고 진헌공(秦獻公)의 아들이다. 기원전 361년에 즉위하여 381년까지 재위했다. 군주의 자리에 오른 후에 온 힘을 다하여 치국에 힘써 진나라를 무시했던 제후들을 마음속으로 깊이 승복시키고 아래로는 령을 내려 인재를 찾았다. 위(衛)나라 출신 공손앙(公孫鞅)을 중용하여 기원전 359년과 기원전 351년 두 번에 걸쳐 변법을 시행했다. 이로써 진나라는 급속하게 국력이 신장되어 강대국으로 등장했다. 효공 11년 기원전 350년 함양으로 천도하고 진나라 역사상 최초로 군자를 위한 부세를 징수했다. 대외적으로는 초나라와 화친하고 한나라와 맹약을 맺어 다시 秦, 趙, 齊 삼국동맹을 맺어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위나라를 동서에서 협공하고자 했다. 여러 번에 걸친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위나라의 안읍(安邑)을 점령하고 낙수(洛水) 이동의 땅을 개척했다. 전국 초기에 초강대국이었던 위나라는 진나라의 동진정책에 밀려 그 도성을 하동의 안읍에서 동쪽의 대량으로 옮겼다. 이로써 위나라는 양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병이 들어 비교적 젊은 나이인 44세에 죽었다.
❏ 진효부[陳孝婦] 진효부의 남편은 전장으로 나가게 되자, 효부에게 부탁하기를, “늙은 어머니가 계시니, 내가 만약 못 돌아오는 날이면 그대가 내 어머니를 잘 봉양해 달라.”고 하니, 효부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남편이 과연 죽으니, 효부는 시어머니를 더욱 잘 봉양하였다. 효부의 친정 부모가 민망히 여기어 개가(改嫁)하기를 권하니, 효부는 자살하려고 하므로 두려워서 감히 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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