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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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驪江[여강] 여주의 강에서
- 李穡[이색] -
驪興江上雪消初[려흥강상설소초] 여흥 강 위에 눈이 녹기 시작하니
欲坐扁舟向草廬[욕좌편주향초려] 조각배 올라타고 집으로 가고 싶네
病骨酸辛春又半[병골산신춘우반] 병든 몸 고통 속에 봄은 또 지나는데
奈何猶未賦歸歟[내하유미부귀여] 어이 아직 사직하고 돌아가지 못하나
春風澹蕩曉陰垂[춘풍담탕효음수] 봄바람 고요히 불고 구름 드리운 새벽
白髮衰翁坐詠詩[백발쇠옹좌영시] 백발의 쇠한 늙은이 앉아서 시를 읊네
江上綠波連竹嶺[강상녹파연죽령] 강 위의 푸른 물결 죽령과 연하였거니
泝流何日望南陲[소류하일망남수] 언제 거슬러 올라 남쪽 변경 바라볼까
天地無涯生有涯[천지무애생유애] 천지는 끝이 없고 인생은 끝이 있으니
浩然歸志欲何之[호연귀지욕하지] 호연히 돌아갈 뜻 어디에 두어야 하나
驪江一曲山如畵[여강일곡산여화] 여강의 한 굽이에 산이 그림과 같으니
半似丹靑半似詩[반사단청반사시] 절반은 단청과 같고 절반은 시와 같네
說食飢夫口帶涎[설식기부구대연] 음식 얘기 주린 사내 입에 침을 흘리고
腹中無物只心煎[복중무물지심전] 뱃속에 든 것 없으니 마음만 탈 뿐이네
牧翁歸興難兄弟[목옹귀흥난형제] 나의 돌아갈 흥취 그와 다를 바 없거니
謾與詩家作好聯[만여시가작호련] 공연히 시인과 더불어 연구나 짓고 있네
※ 이 시의 세 번 째 수는 여러 곳에서 ‘여강미회(驪江迷懷)’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 이색[李穡] 고려(高麗) 말의 문신(文臣)이자 학자(學者)이다. 본관(本貫)은 한산(韓山)으로 이곡(李穀)의 아들이다. 자 영숙(潁叔)이고 호 목은(牧隱)이며 시호 문정(文靖)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문인(文人)으로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정방 폐지, 3년상을 제도화하고, 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우왕(禑王)의 사부였다.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우왕이 강화로 유배되자 조민수(曺敏修)와 함께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을 억제하려 하였으나 이성계가 득세하자 장단(長湍)·함창(咸昌) 등지에 유배되었다. 1391년(공양왕恭讓王 3) 석방되어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책봉되었으나 다시 여흥(驪興)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조선 개국 후 인재를 아낀 태조가 1395년 한산백(韓山伯)에 책봉했으나 사양, 이듬해 여강(驪江)으로 가던 중 죽었다. 문하에 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 학문과 정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저서에 목은시고(牧隱詩藁), 목은문고(牧隱文藁)가 있다.
❍ 여강[驪江] 남한강(南漢江). 경기 여주(驪州)에서 여주 지역을 흐르는 한강(漢江)을 일컫는 이른다. 남한강이 강원도 원주에서 흘러나오는 섬강(蟾江), 용인에서 발원한 청미천(淸渼川)과 만나는 지역이 바로 여주의 점동면 삼합리(三合里, 도리)이기 때문에 군에서는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을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 여흥[驪興] 경기도 여주(驪州)의 옛 지명. 여주시(驪州市)는 경기도의 최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강원도 원주시, 서쪽은 이천시, 광주시, 남쪽은 충청북도 음성군과 충주시, 북쪽은 양평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 초려[草廬] 볏짚이나 밀짚, 갈대, 왕골, 띠, 풀 따위로 이엉을 만들거나 지붕을 인 집. 남에게 자기의 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 산신[酸辛] 맵고 시다는 뜻으로, 삶의 괴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고생. 고초. 괴로움. 신고하다. 고생이다. 쓰라리다. 괴롭다. 슬프다. 고달프다.
❍ 부귀[賦歸] 은퇴하고 고향에 돌아가 살다. 공자가 진(陳)나라 땅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돌아가자, 돌아가자[歸與, 歸與!]”라고 했던 데서 나온 말이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論語 公冶長>
❍ 담탕[淡蕩] 물이 돌아 천천히 흐르는 모양. 여유 있고 한가로운 모양. 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고사인 노중련(魯仲連)이 의리상 무도한 진(秦) 나라를 황제로 섬기지 않았고, 조(趙) 나라 평원군(平原君)이 천금을 주어도 받지 않은 등의 큰 절의를 찬양한 말로, 이백(李白)이 노중련을 읊은 시에 “천금을 주는 것도 하찮게 여겨 평원군을 돌아보고 웃었으니, 내 또한 방일한 사람인지라 어쩌면 분기하여 그와 동조할 수 있을까[意輕千金贈 顧向平原笑 吾亦澹蕩人 拂衣可同調]”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李太白集 卷二 古詩>
❍ 효음[曉陰] 구름 낀 새벽. 흐린 새벽, 날이 밝아도 어둑어둑함을 이른다.
❍ 호연[浩然] 넓고 큰 꼴. 물이 그침이 없이 흐르는 모양. 넓고 성대한 모양. 정대하고 강직한 모양. 마음이 넓고 뜻이 아주 큰 모양.
❍ 단청[丹靑] 붉은빛과 푸른빛. 옛날식 건물의 벽과 기둥, 천장 따위에 여러 가지 색으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림. 또는 그 그림이나 무늬. 여러 가지의 고운 빛깔. 또는 그 빛깔을 내는 물질.
❍ 난형제[難兄弟] 난형난제(難兄難弟).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려움.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비슷함. 사물의 우열이 없음. 즉, 재덕(才德)이 서로 등등하여 높낮이가 없음을 뜻한다.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진식(陳寔)의 두 아들인 진기(陳紀)와 진심(陳諶) 또한 모두 재덕이 뛰어나서 당시에 명성이 높았는데, 한번은 기의 아들 군(群)과 심의 아들 충(忠)이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덕이 더 훌륭하다고 우기다가 결론을 얻지 못하여 할아버지인 식에게 가서 묻자, 식이 이르기를 “원방은 형이 되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가 되기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형제가 똑같이 훌륭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원방은 기(紀)의 자이고, 계방은 심(諶)의 자이다.
❍ 시가[詩家] 시를 짓는 사람. 시인(詩人).
❍ 연구[聯句] 한시(漢詩)의 대구(對句). 몇 사람이 모여, 한 사람이 한 구씩 구를 이어가며 지은 시. 한무제(漢武帝) 때의 백량대(柏梁臺) 연구(聯句)를 시발로 본다. 연구는 육조(六朝)시대에도 사교 자리에서 성행하였다. 도연명(陶淵明)의 시집에도 한 사람이 5언(五言) 1구로 4구 2운(隔句로 押韻)씩 이어 나간 것이 있다. 당(唐)나라에서도 성행하였으며, 한유(韓愈)에 이르러서 체(體)가 정하여졌다. 하나는 한 사람이 2구 1운을 대구(對句) 형식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한 사람이 대구의 전반(前半)을 짓고, 다음 사람이 이를 완성하고는 또 대구의 전반을 만드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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