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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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歸園田居五首[其二]귀원전거5수2 / 전원에 돌아와서
- 陶淵明[도연명] -
野外罕人事[야외한인사] 들녘이라 사람들과 사귐 드물고
窮巷寡輪鞅[궁항과륜앙] 마을 궁벽하니 수레와 말도 적어
白日掩荊扉[백일엄형비] 대낮에도 사립짝 닫아 놓고
虛室絶塵想[허실절진상] 텅 빈 방안에서 속된 생각 끊네
時復墟曲中[시부허곡중] 이따금 촌락의 공터를 찾아
披草共來往[피초공래왕] 풀 섶 헤치며 서로 왕래하나
相見無雜言[상견무잡언] 서로 만나도 번잡한 말이 없고
但道桑麻長[단도상마장] 뽕과 삼이 자람만을 이야기 하네
桑麻日已長[상마일이장] 뽕과 삼은 나날이 자라나고
我土日已廣[아토일이광] 나의 농토도 나날이 넓어지나
常恐霜霰至[상공상산지] 항상 염려는 서리나 우박 내려
零落同草莽[영락동초망] 잡초덤불처럼 시들까 걱정이네
※ 제목이 歸田園居(귀전원거)라고 된 본(本)도 있다. 귀원전거(歸園田居)는 전체가 5수인지 6수인지에 대하여도 논란이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6수로 치는 종묘재동고(種苗在東皐 : 歸田園) 시(詩)인데, 도연명(陶淵明)의 작품이 아니고 강엄(江淹)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청대(淸代) 장옥곡(張玉穀)은 고시상석(古詩賞析)에서 “한자창(韓子蒼)이 말하기를 ‘전원(田園) 6수의 마지막 편(篇)은 행역(行役)을 서술한 것으로 앞의 다섯 수와는 다르다. 그런데 속본(俗本)에는 마침내 강엄(江淹)의 종묘재동고(種苗在東皐)를 마지막 편으로 삼았으며, 소동파(蘇東坡) 역시 그대로 따랐다. 진술(陳述)의 고본(古本)에는 다만 다섯 수가 실려 있는데, 나는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마땅히 장상국(張相國)의 본(本)과 같이 잡영(雜詠) 6수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田園六首, 末篇乃序行役, 與前五首不類. 今俗本乃取江淹種苗在東皐為末篇, 東坡亦因其誤和之. 陳述古本止有五首, 予以為皆非也. 當如張相國本題為雜詠六首.]’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진술(陳述)의 고본(古本)을 따라 5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 도연명[陶淵明] 도잠(陶潛).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 송(宋:유송劉宋) 초기 사람이다. 시인이자 문학가로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시문으로 시명을 얻었다. 강주(江州) 심양(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량(元亮)이다. 송(宋)나라에 와서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연명(淵明)이 그의 자(字)라고도 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東晉)의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에 이르렀으며, 조부 도무(陶茂)와 부친 도일(陶逸)도 태수를 지냈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생활을 위하여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항상 전원생활을 동경한 그는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고향에 은거한 뒤에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에게 정절선생(靖節先生}이란 시호를 주어 불렀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고금의 은일시인 가운데 첫머리[古今隱逸詩人之宗]”라 평가했을 만큼 그의 시풍이 중국문학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주요 작품으로 음주(飮酒)·귀원전거(歸園田居)·도화원기(桃花源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도연명이 직접 지은 만사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다.
❍ 야외[野外] 시가지(市街地)에서 좀 떨어져 있는 들. 또는 그런 지역. 사방을 가리지 않은, 건물의 바깥. 마을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들. 집채의 바깥. 도시에 인접하여 있는 곳.
❍ 궁항[窮巷] 좁고 으슥하고 쓸쓸한 뒷골목. 외딴 촌구석. 궁한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형비[荊扉] 가시나무로 얽은 사립문. 가시나무로 짜 만든 문짝. 조잡(粗雜)하고 허름하게 만든 문짝. 구차한 살림살이. 두보(杜甫)의 시 감림(甘林)에 “늙어서 잠이나 음식을 적게 하고, 맑고 훤한 사립문을 즐기노라[遲暮少寢食 淸曠喜荊扉]”라고 하였다.
❍ 허실[虛室]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방.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의 이른바 심재(心齋)를 논하는 대목에 “저 빈 곳을 바라보아라. 텅 빈 방에서 광채가 뿜어 나오지 않던가. 온갖 길하고 상서로운 것은 조용히 멈추어 있는 곳에 모여드는 법이다[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라는 말이 나온다. 즉 마음이 청허(淸虛)하여 욕심이 없으면 도심(道心)이 절로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작위(作爲)를 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또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이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에 비유하는 말이다. 허실(虛室)은 아무것도 없는 빈 방, 곧 물욕이 없는 마음의 비유한 것이다. 허실생백(虛室生白).
❍ 진상[塵想] 속된 생각. 또는 세속의 잡념.
❍ 허곡[墟曲] 허리(墟里). 궁벽한 촌락. 墟(허)는 빈터나 마을을 이르며 曲(곡)은 촌락이라는 뜻으로, 향리(鄕里)의 빈터 따위를 이른다.
❍ 초망[草莽] 풀이 더부룩하게 난 무더기. 풀의 떨기. 풀숲. 촌스럽고 메떨어져서 세상 형편에 서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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