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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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歸園田居五首[其四]귀원전거5수4 / 전원에 돌아와서
- 陶淵明[도연명] -
久去山澤游[구거산택유] 오래도록 자연에 놀지 못하다
浪莽林野娛[낭망림야오] 맘껏 드넓은 숲과 들을 즐기네
試攜子姪輩[시휴자질배] 되는대로 자식과 조카들 데리고
披榛步荒墟[피진보황허] 덤불 헤쳐 버려진 옛터를 가네
徘徊丘壟間[배회구롱간] 둔덕 사이 이리저리 서성이니
依依昔人居[의의석인거] 옛사람 살던 자취 어렴풋해라
井竈有遺處[정조유유처] 우물과 부엌 터는 흔적만 있고
桑竹殘朽株[상죽잔후주] 뽕 대나무는 썩은 등걸만 남아
借問採薪者[차문채신자] 나무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나니
此人皆焉如[차인개언여] 여기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갔소
薪者向我言[신자향아언] 나무하는 이 나에게 하는 말이
死沒無復餘[사몰무부여] 모두 죽어서 남은 이가 없다오
一世異朝市[일세이조시] 한 세대에 조시가 바뀐다더니
此語眞不虛[차어진불허] 참으로 괜한 말이 아니었구나
人生似幻化[인생사환화] 인생은 환영인 양 변하여 가니
終當歸空無[종당귀공무] 끝내는 공과 무로 돌아가누나
※ 제목이 歸田園居(귀전원거)라고 된 본(本)도 있다. 귀원전거(歸園田居)는 전체가 5수인지 6수인지에 대하여도 논란이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6수로 치는 종묘재동고(種苗在東皐 : 歸田園) 시(詩)인데, 도연명(陶淵明)의 작품이 아니고 강엄(江淹)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청대(淸代) 장옥곡(張玉穀)은 고시상석(古詩賞析)에서 “한자창(韓子蒼)이 말하기를 ‘전원(田園) 6수의 마지막 편(篇)은 행역(行役)을 서술한 것으로 앞의 다섯 수와는 다르다. 그런데 속본(俗本)에는 마침내 강엄(江淹)의 종묘재동고(種苗在東皐)를 마지막 편으로 삼았으며, 소동파(蘇東坡) 역시 그대로 따랐다. 진술(陳述)의 고본(古本)에는 다만 다섯 수가 실려 있는데, 나는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마땅히 장상국(張相國)의 본(本)과 같이 잡영(雜詠) 6수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田園六首, 末篇乃序行役, 與前五首不類. 今俗本乃取江淹種苗在東皐為末篇, 東坡亦因其誤和之. 陳述古本止有五首, 予以為皆非也. 當如張相國本題為雜詠六首.]’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진술(陳述)의 고본(古本)을 따라 5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 도연명[陶淵明] 도잠(陶潛).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 송(宋:유송劉宋) 초기 사람이다. 시인이자 문학가로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시문으로 시명을 얻었다. 강주(江州) 심양(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량(元亮)이다. 송(宋)나라에 와서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연명(淵明)이 그의 자(字)라고도 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東晉)의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에 이르렀으며, 조부 도무(陶茂)와 부친 도일(陶逸)도 태수를 지냈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생활을 위하여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항상 전원생활을 동경한 그는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고향에 은거한 뒤에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에게 정절선생(靖節先生}이란 시호를 주어 불렀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고금의 은일시인 가운데 첫머리[古今隱逸詩人之宗]”라 평가했을 만큼 그의 시풍이 중국문학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주요 작품으로 음주(飮酒)·귀원전거(歸園田居)·도화원기(桃花源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도연명이 직접 지은 만사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다.
❍ 산택[山澤] 산과 내라는 뜻으로 자연을 이르는 말. 산천(山川). 산림천택(山林川澤).
❍ 유환[遊宦] 다른 나라 또는 먼 곳에 가서 벼슬을 하다. 타향에서 벼슬을 하다. 출사(出仕)하다. 벼슬살이를 위해 고향을 떠나 타지를 전전함을 이른다.
❍ 낭망[浪莽] 얽매이지 않고 멋대로 노는 모습[放蕩]. 숲의 광대한 모습을 형용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廣大], 버려두고 돌보지 않음을 이르는 말로 보기도 한다[放曠].
❍ 임야[林野] 숲과 들을 아울러 이르는 말. 재산적인 가치를 가진 산지.
❍ 시[試] 잠시 ~을 해보다. 우선 ~을 해보다.
❍ 피진[披榛] 관목 숲을 헤치다. 덤불을 헤치다. 잡목 숲을 헤치다.
❍ 황허[荒墟] 황폐(荒廢)한 폐허. 버려두어 못 쓰게 된 건물이나 토지 따위의 터. 황무한 공지(空地). 버려두어 못 쓰게 된 성터.
❍ 구롱[丘壟] 땅이 주변보다 조금 높고 경사가 진 곳. 언덕과 밭두둑. 작은 언덕. 무덤. 분묘. 언덕. 조상의 산소.
❍ 의의[依依] 희미한 모습. 혹은 그리워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는 모습. 연약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양. 아쉬워하는 모양. 섭섭해 하는 모양. 사모하는 모양. 그리워하는 모양.
❍ 차문[借問] 물어 보다. 청문(請問)과 같다
❍ 일세[一世] 한 세대. 사람의 일생. 온 세상. 한 임금의 시대. 일대(一代). 일생(一生). 당대. 한 평생. 아버지로부터 아들에 걸치는 일대(一代) 30년 동안.
❍ 조시[朝市] 조정(朝庭)과 시장(市易). 성내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조정(朝庭)과 일반 시정(市井). 아침에 서는 시장. 명리(名利)를 다투는 곳이나 티끌세상[塵世]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시조(市朝).
❍ 조시[朝市] 조정(朝廷)을 일컫는 말이다. 안지추(顔之推)의 관아생부(觀我生賦)에 “마침내 조정도 변하고 저자도 바뀌었다[訖變朝而易市]”고 한 것은 “조정이 뒤바뀌었다[朝市遷革]”는 말과 그 뜻이 같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장인(匠人)이 국가의 도읍을 설계할 적에 조정은 왕궁으로부터 남쪽에 마주하게 하고 저자는 등뒤 북쪽으로 두었다[面朝後市]”고 하였으니, 대개 시장의 맞은편이 곧 조정이고 조정의 뒤가 곧 시장이므로, 예로부터 말하는 자가 조시(朝市)로 조정(朝廷)을 가리킨 예가 많다.
❍ 환화[幻化] 허깨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몽환처럼 변하다. 만물은 본디 실재하지 않고 공허한 것임을 일컫는 불가의 말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환술사(幻術師)가 만들어 낸 환영처럼 부처나 보살이 신통력을 써서 임시로 변화시켜 나타낸 것이므로 결국 공허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 공무[空無] 온갖 사물의 제 바탕이 없어지고 텅 빈 상태. 일체의 사물에 제 바탕이 없어진 상태. 모든 사물에는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본성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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