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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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對酒五首[其四]대주5수4 / 백 년을 산들
- 白居易[백거이] -
百歲無多時壯健[백세무다시장건] 백 년을 산들 건강한 때 얼마이며
一春能幾日晴明[일춘능기일청명] 봄철이라 한들 맑은 날 그 얼마랴
相逢且莫推辭醉[상봉차막추사취] 이렇게 만났으니 마다말고 취하여
聽唱陽關第四聲[청창양관제사성] 양관의 서글픈 이별가나 들으세나
❍ 추사[推辭] 물러나며 사양함.
❍ 양관제사성[陽關第四聲] 양관(陽關)은 고대 관문(關門)의 명칭으로,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돈황현(敦煌縣) 서북쪽이다. 양관곡은 위성곡(渭城曲) 혹은 양관삼첩(陽關三疊)이라고도 불리며, 소동파는 이 시의 창법을 여러 가지로 정리하기도 하였는데, 그 창법 중에 하나가 앞의 세 구는 한 번 창(唱)하고, 제4구만 세 번 중첩하여 창(唱)하는 방법인데 간단하면서도 음악적인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훗날, 벗을 송별할 때 불러주는 송별가(送別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양관[陽關] 돈황시(敦煌市) 서남쪽에 있다. 기원후 121년 서한의 무제가 서역을 경영하기 위해 하서주랑(河西走廊)에 돈황 등 4개 군을 설치하고 양관(陽關)과 옥문관(玉門關)을 세웠다. 서한이래로 역대 왕조들이 군사요충지인 이곳으로 군사를 보내 지켰다. 많은 군사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상인과 승려, 사신, 여행객 등 많은 사람들이 또한 이곳을 내왕했다. 특히 문인들이 이곳에서 감회를 읊은 작품이 많다.
❍ 양관곡[陽關曲] 본명은 위성곡(渭城曲)이다. 진시황이 수도로 삼았던 함양(咸陽)은 당대(唐代)에는 위성(渭城)으로 불렸다. 당시 변방인 양관(陽關)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서 송별연을 베풀고 전송했다. 왕유(王維)의 시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는 그런 정경을 읊은 것 중에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시는 일명 위성곡(渭城曲) 또는 양관곡(陽關曲)이라고도 한다. 양관곡이라고 하면 보통 이별가의 대명사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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