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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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撲棗謠[박조요] 대추서리
- 李達[이달] -
隣家小兒來撲棗[인가소아래박조] 이웃집 아이가 와 대추를 터니
老翁出門驅小兒[노옹출문구소아] 주인 노인 문을 나서 아이를 쫓네
小兒還向老翁道[소아환향노옹도] 아이가 달아나다 홱 돌아서 내뱉길
不及明年棗熟時[불급명년조숙시] 내년 이맘때까지 살도 못할 거면서
<撲棗謠박조요 / 대추털이 노래 / 李達이달 : 蓀谷詩集손곡시집>
※ 이웃집의 어린 아이가 와서 대추를 턴다. 주인 노인네가 문 밖으로 나와 아이를 쫓는다. 달아나던 아이가 돌아서서 노인에게 말하길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지도 못할 거면서...”라고 놀린다.
❍ 이달[李達]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서담(西潭)·동리(東里)이다.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후손으로, 충청남도 홍주(洪州)에서 아버지 이수함(李秀咸)과 홍주 관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가 천인(賤人)이어서 세상에 쓰여질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에 힘써 이백(李白)과 성당십이가(盛唐十二家)의 작품들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 정사룡(鄭士龍)과 박순(朴淳) 등의 문인(門人)으로 문장과 시에 능하고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신분적 한계로 벼슬은 한리학관(漢吏學官: 사역원司譯院 소속 관리)에 그쳤다.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지어 선조 때의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과 시사(詩社)를 맺고 교유하였다. 문단에서는 이들을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고 불렀다. 신분적 제약을 시문(詩文)으로 달래며 강원도 원주(原州)의 손곡(蓀谷)에 살면서 손곡(蓀谷)을 자신의 호(號)로 하였다. 말년에는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을 가르쳤다. 문집에는 손곡시집(蓀谷詩集)이 있다.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에서 “그의 시는 청신(淸新)하고 아려(雅麗)하여 수준 높게 지은 것은 왕유(王維)·맹호연(孟浩然)·고적(高適)·잠삼(岑參)에 버금가고, 수준이 낮은 것도 유장경(劉長卿)·전기(錢起)의 운율을 잃지 않았다. 신라(新羅)·고려(高麗) 이래로 당시(唐詩)를 지었다고 하는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其詩淸新雅麗, 高者出入王·孟·高·岑, 而下不失劉·錢之韻. 自羅麗以下, 爲唐詩者皆莫及焉.]”고 하였고, 또 “평생 몸 붙일 곳도 없어 사방으로 유리걸식(流離乞食)하여 사람들이 대부분 천하게 여겼다. 궁색한 액운으로 늙어간 것은 그가 시 짓는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몸은 곤궁했어도 불후(不朽)의 명시를 남겼으니 한 때의 부귀로 어떻게 그와 같은 명예를 바꿀 수 있으랴[平生無着身地, 流離乞食於四方, 人多賤之. 窮厄以老, 信乎坐其詩也. 然其身困而不朽者存, 豈肯以一時富貴易此名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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