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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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金陵懷古[금릉회고] 금릉의 옛날을 회상하다
- 劉禹錫[유우석] -
潮滿冶城渚[조만야성저] 야성의 물가는 밀물이 넘실대고
日斜征虜亭[일사정로정] 정로정에는 지는 햇살 비끼었네
蔡洲新草綠[채주신초록] 채주는 새 풀 돋아 녹색을 띠고
幕府舊煙靑[막부구연청] 막부는 예전처럼 연기 희뿌옇네
興廢由人事[흥폐유인사] 나라의 흥망은 사람에 달렸거니
山川空地形[산천공지형] 산천과 지형의 험고 부질없어라
後庭花一曲[후정화일곡] 망국의 노래 옥수후정화 한가락
幽怨不堪聽[유원불감청] 사무친 원한 차마 들을 수 없네
<金陵懷古금릉회고 / 금릉의 옛날을 회상하다 / 劉禹錫유우석>
❍ 유우석[劉禹錫] 당(唐)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 문학가, 철학가이다. 팽성인(彭城人)으로 자는 몽득(夢得)이고 호는 여산인(廬山人)이다. 정원(貞元) 9년(793년)에 진사가 되었다. 유종원(柳宗元), 진간(陳諫), 한엽(韓曄) 등과 교분을 맺었고, 왕숙문(王叔文)과 친분이 깊었다. 벼슬은 감찰어사(監察御史)·태자빈객(太子賓客)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가 북방에서 왔으므로 스스로 중산(中山: 하북성河北省 정주시定州市) 출신이라고 했다. 특히 시문에 뛰어나 백거이(白居易)는 그의 시서(詩叙)에 시호(詩豪)라고 찬양하였다. 태자빈객(太子賓客)을 지낸 까닭에 사람들이 유빈객(劉賓客)이라고도 불렀고, 만년에 검교예부상서, 비서감 등의 빈 직함을 가진 적도 있어서 비서유상서(秘書劉尙書)라고도 불렀다. 시와 문장에 두루 능하여 유종원(柳宗元)과는 유유(劉柳)로 병칭되고, 위응물(韋應物)·백거이(白居易)와는 삼걸(三杰)로 불렸으며, 백거이(白居易)와는 유백(劉白)으로 합칭되었다. 누실명(陋室銘)·죽지사(竹枝詞)·양류지사(楊柳枝詞)·오의항(烏衣巷) 등의 명편을 남겼다. 저작으로는 천론(天論) 3편과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 유빈객집(劉賓客集)을 남겼다.
❍ 금릉[金陵]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남경(南京)으로, 전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맨 처음 금릉읍(金陵邑)을 설치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땅에 왕기(王氣)가 있으므로 금(金)을 묻어서 그곳을 진압했기 때문에 금릉이라 이름한 것이라고 한다. 진(晉)·송(宋)·제(齊)·양(梁)·진(陳)이 도읍했던 곳이다.
❍ 금릉[金陵] 중국 4대 고도(古都)의 하나인 남경(南京)의 아명(雅名)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손권이 이곳에 도읍을 정한 뒤부터 강남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진(晉)나라 때에는 건강(建康)으로 개칭하였고, 이후 남왕조의 국도가 되어 번영하였다. 사조(謝眺)의 고취곡(鼓吹曲)에 “강남에 아름다운 땅이 있으니, 금릉이 바로 제왕의 고을이다[江南佳麗地 金陵帝王州]”라고 하였고, 이백(李白) 시 금릉가송별범선(金陵歌送別范宣)에 “그 옛날 금릉성 얼마나 웅장했던가, 천하의 영웅들이 모두 이곳 차지했네[金陵昔時何壯哉 席卷英豪天下來]”라고 하였다. 명(明) 태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하였다.
❍ 회고[懷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옛 자취를 돌이켜 생각함.
❍ 조수[潮水] 해와 달, 특히 달의 인력(引力)에 의하여 일정한 간격을 두어 주기적으로 해수면의 높이가 높아졌다 낮아졌다하는 현상, 또는 그 바닷물을 이른다. 보통 하루 두 번씩, 12시간 25분 간격으로 일어난다. 해조(海嘲).
❍ 야성[冶城] 지명.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현재의 남경성(南京城) 서쪽에 있는 작은 토산에 세운 토성(土城)으로 금속을 제련하여 병기를 만들던 곳이라 한다. 야성을 끼고 흐르는 시내 남쪽에 맹호연의 집이 있었다 한다. 또 회계산(會稽山)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수계(修禊)했던 진(晉) 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숙부인 왕도(王導)가 야성에다 멋진 동산과 별장을 세웠으므로 성제(成帝)가 관람하며 노닐었다는 일화가 있으며, 또 왕희지가 사안(謝安)과 함께 이곳에 올라가서 회포를 나누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李太白集 卷20 登金陵冶城西北謝安墩 註>
❍ 정로정[征虜亭] 동진(東晉) 시대 정로장군(征虜將軍) 사석(謝石)이 금릉(金陵)에 세운 정자(亭子)이다. 옛 터가 지금의 중국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 남쪽 교외에 남아 있다. 단양기(丹陽記)에 “이 정자는 태안(太安) 연간에 정로장군(征虜將軍) 사안(謝安)이 지었다. 그로써 정로정(征虜亭)이라 이름하게 되었다[亭是晉太安(元?)中征虜將軍謝安所立, 因以爲名.]”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서(晉書)·사안전(謝安傳)등의 사료(史料)에 의하면, 사안이 정로장군(征虜將軍)이라는 봉호를 받은 적이 없다. 이에 사안(謝安)은 사석(謝石)의 잘못임이 분명하다.
❍ 채주[蔡洲] 사주(砂洲) 이름이다. 양양(襄陽)의 현산(峴山) 동남쪽 한수(漢水) 가운데 있다. 전당시(全唐詩)에 왕유(王維)의 시 곡맹호연(哭孟浩然)을 수록하면서 그 뒤에 주(注)를 달아 이르기를 “현산(峴山) 동남쪽 1리 지점에 채주(蔡洲)가 있으니, 채모(蔡瑁)가 산 곳이라 해서 그리 부른다[峴山東南一裏有蔡洲, 蔡瑁居之故雲.]”라고 하였다. 맹호연(孟浩然)의 고향 일대이다. 또, 수경주(水經注) 권28 면수(沔水) 조에 “면수(沔水)는 또한 동남쪽으로 채주(蔡洲)를 지나가는데 한(漢)나라 장수교위(長水校尉) 채모(蔡瑁)가 그곳에 살았으므로 채주라 이름하였다[沔水又東南逕蔡洲, 漢長水校尉蔡瑁居之, 故名蔡洲.]”라고 하였다. 주(洲)는 물 가운데 있는 섬이다. 현산(峴山)은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 남쪽 3리 지점에 있는 산이다. 현수산(峴首山)이라고도 한다. 동쪽으로 한수(漢水)를 굽어보고 있다. 양양(襄陽) 남쪽의 요새였다
❍ 막부[幕府] 원래는 군대가 출정(出征)하였을 때 숙영(宿營)하는 군막(軍幕), 장군이 군무(軍務)를 보는 군막(軍幕)을 이르는데, 후세에는 관찰사(觀察使)나 절도사(節度使)가 주재(駐在)하는 관부(官府)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옛날 중국에서 장군을 상치(常置)하지 않고 유사시(有事時)에만 임명하였다가 일이 끝나면 해임하였으므로, 청사(廳舍)가 없이 장막을 치고 집무소(執務所)로 삼은 데서 유래(由來)한 것이다.
❍ 막부산[幕府山]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 북쪽 장강(長江)가에 있는 야산이다. 진 원제(晉元帝)가 도강(渡江)한 후에 동진(東晉)의 승상(丞相) 왕도(王導)가 이곳에 막부(幕府)를 세워 막부산(幕府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 산천공지형[山川空地形] 사기(史記) 65권 손자오기전(孫子吳起傳)에 의하면, 전국시대 위 무후(魏武侯)가 배를 타고 서하(西河)를 내려가다가 오기(吳起)를 돌아보고서 “아름답다! 산하(山河)의 험고함이여. 이것은 위국(魏國)의 보배로다[美哉乎! 山河之固, 此魏國之寶也!]”라고 말하니, 오기가 답하기를 “사람의 덕에 있지, 산천의 험고함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임금이 덕을 닦지 않으면 이 배 안의 사람들 모두가 적국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在德不在險 若君不修德 舟中之人 盡爲敵國也]”라고 하였다.
❍ 후정화[後庭花]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라 하며, 후인들은 이를 망국지음(亡國之音)이라 칭한다. 남북조시대에 진(陳)나라의 마지막 군주인[진후주(陳後主)] 진숙보(陳叔寶)가 빈객을 맞아 귀비(貴妃) 등과 즐겁게 잔치할 때마다 귀인(貴人)과 여학사(女學士)와 빈객들에게 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게 하였다. 그중에 더욱 아름다운 시를 뽑아 가사로 삼고 노래를 지어 아름다운 궁녀 수백 명으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하였는데, 옥수후정화는 그 악곡 중의 하나이다.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의 내용은 “꽃 숲에 묻혀 있는 귀비의 전각이 임춘 고각에서 바라보인다. 단장한 귀비 모습 경국의 미인이네. 창문에 어른거릴 뿐 나오지 않음은, 휘장 걷고 서로 만날 때 함박 웃는 뜻이겠지. 아름다운 너의 얼굴 이슬 머금은 꽃송이 같다. 만발한 옥수(玉樹)에 흐르는 빛 뒤뜰을 비추네. 꽃은 피었다가 져 오래가지 않으리니, 땅 가득 떨어진 꽃잎 고요한 데로 돌아가겠지[麗宇芳林對高閣 新妝豔質本傾城 映戶凝嬌乍不進 出帷含態笑相迎 妖姬臉似花含露 玉樹流光照後庭 花開花落不長久 落紅滿地歸寂中]”이다.
❍ 유원[幽怨] 마음속에 품고 있는 원한.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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