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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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雜興九首[其八]잡흥9수8 / 양주의 봄버들
- 崔惟淸[최유청] -
六載遊楊州[육재유양주] 육년을 양주 땅에 노닐면서
五賞楊州春[오상양주춘] 다섯 번 양주의 봄을 즐겼네
楊州春似舊[양주춘사구] 양주의 봄은 예나 다름없건만
老面但日皴[노면단일준] 늙은 얼굴 날로 주름만 늘어
壯志雖已鑠[장지수이삭] 장한 뜻은 이미 사라졌지만
風情與時新[풍정여시신] 풍정은 철 따라 더욱 새로워
最憐街頭柳[최련가두류] 제일 어여쁜 건 길가의 버들
嫋嫋欲惱人[뇨뇨욕뇌인] 하늘하늘 사람을 번뇌케 하네
❍ 최유청[崔惟淸] 고려(高麗) 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는 직재(直哉)이고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문하시랑 최석(崔奭, 崔錫)의 아들이다. 예종 때 과거에 급제했으나 학문이 완성되지 않았다 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독서에만 힘썼다. 후에 추천을 받아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으나 인종초에 이자겸(李資謙)의 간계로 파직되었다. 이자겸이 몰락한 뒤 내시(內侍)가 되었고, 좌사간(左司諫)·상주수(尙州守)·시어사(侍御史)를 역임하였다. 1132년(인종10)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으로 진주사(陳奏使)가 되어 송나라에 다녀왔다. 1142년에 간의대부(諫議大夫)로 금나라에 다녀와 호부시랑(戶部侍郎)에 제수되었고, 동북면병마부사(東北面兵馬副使)·승선(承宣)을 역임하였다. 1149년(의종3)에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가 되고, 2년 후 왕제 대령후(大寧侯)가 참소된 사건에 처남인 정서(鄭敍)와 함께 관련되어 남경유수사(南京留守使)로 좌천되고, 6년 뒤 충주목사(忠州牧使), 광주목사(廣州牧使)로 좌천되었다. 1161년(의종15)에 중서시랑평장사에 오르고, 정중부의 난 때 다른 문신은 모두 화를 입었으나 평소 그의 덕망에 감화한 무신들이 그를 보호하여 화를 면했다. 명종이 즉위하자 중서시랑평장사에 다시 임명되었고 이어 수사공집현전대학사판예부사(守司空集賢殿大學士判禮部事)로 치사했다. 경사에 해박했으며, 불경에도 관심이 깊어 많은 학생과 승려의 자문에 응했다. 왕의 조서를 받들어 이한림집주(李翰林集註)을 편찬했고 유문사실(柳文事實)을 주해했다. 문집에 남도집(南都集)이 있으며 동문선(東文選)에 6수의 시와 45편의 문이 실려 있다. 시호는 문숙(文淑)이다.
❍ 장지[壯志] 장대(壯大)한 포부(抱負). 크게 품은 뜻. 마음에 품은 장하고 큰 뜻.
❍ 풍정[風情] 풍치(風致)가 있는 정회(情懷). 정서와 회포를 자아내는 풍치나 경치.
❍ 뇨뇨[嫋嫋] 뇨뇨(嬝嬝). 하늘거리다. 약하디 약함. 바람이 솔솔 부는 모양. 가늘고 길어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양. 裊裊(뇨뇨)로도 쓴다. 두목(杜牧)의 시 증별(贈別)에 “예쁘고도 간드러져라 십삼 세 남짓한 아가씨여, 이월 초의 가냘픈 두구의 가지로다.[娉娉嫋嫋十三餘 荳蔻梢頭二月初]”라고 하였다.
❍ 뇌인[惱人] 남을 고뇌하게 하다. 사람을 괴롭히다, 애태우게 하다. 남을 성나게 하다. 나무라다. 남을 원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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