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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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도는 만물을 정돈한다
- 한비자 제20편 해노[12]-
도는 만물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며, 만리(萬理)의 귀착점이다. 이(理)는 이미 이루어진 사물의 조리(條理)이며, 도는 모든 사물을 성립시키는 근본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는 만물을 정돈한다」고 했다. 모든 사물에는 각자 이(理)가 있고, 서로가 침범하지 못한다. 사물에 이(理)가 있어서 서로 침범하지 못하므로 이(理)는 만물을 제약하는 것이며 만물에는 저마다 다른 이(理)가 있다. 만물에는 저마다 다른 이가 있지만 도는 만물의 이를 모은다.
따라서 유동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유동변화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일정한 상칙(常則)이 없다. 일정한 상칙이 없으므로 육체의 생사와 존망은 도에 의해서 지배되며, 온갖 지혜는 도를 짐작하게 되고, 만물은 도를 얻느냐 못 얻느냐에 따라서 흥망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늘이 높은 것은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땅이 만물을 간직하는 것은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북두칠성이 그 위력을 보전하는 것도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해와 달빛이 변하지 않는 것도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오행이 그 자리를 잃지 않는 것도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네 계절이 그 기후의 변화를 순조롭게 하는 것도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황제가 사방을 지배한 것도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적송자 시대의 우사가 천지와 함께 하며, 성인이 제도와 문물을 창조한 것도 도를 얻었기 때문인 것이다. 도는 요와 순에 있어서는 지(知)가 되고, 접여에게는 그 기괴한 성격이 되었고, 걸과 주와 함께 멸망했고, 탕과 무와 함께 영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가까이 있는가 하면 사방의 극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먼 곳에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 곁에 있으며, 어두운가 하면 그 빛은 언제나 찬란하며, 밝은가 하면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공로를 보면 우주를 창조했으며, 그 조화하는 힘은 번개와 벼락을 달랜다. 우주의 만물은 모두가 도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다.
도의 실체는 제약되는 법이 없으며, 일정한 형식도 없고 때에 따라 부드럽고 미약하며, 이치에 따라 작용하므로 만물은 그것을 얻어 죽기도 하고 혹은 그것을 얻어 탄생하며, 또 그것을 얻어 실패하고 혹은 그것을 얻어 성공한다. 이 도는 이를테면 물과 같은 것으로서 물에 빠진 자는 물을 많이 마셔서 죽고, 목마른 자는 적당히 마시면 살아갈 수 있다.
또 검과 같은 것으로서 우매한 자가 그것을 함부로 휘두르면 화가 생기고 성인이 그것을 들고 난폭한 자를 벌하면 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물은 도를 얻어서 탄생하며 죽고, 완성하며 파괴된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살아 있는 코끼리를 볼 기회가 좀처럼 없으므로 죽은 코끼리의 뼈를 보고 코끼리 그림을 생각해 내고, 살아 있는 코끼리를 상상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다만 제 마음 속에 그려진 코끼리를 진짜 코끼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도는 직접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것이지만, 성인은 그 현실적 효과에 의해서 도의 모양을 보여준다. 그래서 노자는 「도는 상태 없는 상태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노자 제14장)」라고 한 것이다.
이(理)라는 것은 형태를 빌어 말하자면 방(方)과 원(圓), 장(長)과 단(短) 또 질에 있어서는 조(粗)와 밀(密), 견(堅)과 취(脆)를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理)가 정해진 뒤에 도를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이(理)에는 존망과 생사와 성쇠가 있다. 도대체 사물이 있었다 없어졌다 하여, 사는가 생각했는데 어느덧 죽어버리고, 죽었는가 하면 어느덧 살아나고, 처음에는 무성했다가 나중에는 쇠잔한대서야 어찌 상(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천지개벽과 동시에 발생하며, 천지가 멸망해도 죽지 않는 것을 상(常)이라 한다. 그것은 변화하지 않으며, 정리(定理)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일정한 장소가 없으므로 그것을 도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인은 그 신비스러운 허무를 관찰하고 순환하면서 널리 행하여지고 있는 점을 들추어내어 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리하고 비로소 도를 논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이것이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구한 도는 아니다(노자 제1장)」고 한 것이다.
- 韓非子 第20篇 解老[12]-
道者, 萬物之所然也, 萬理之所稽也. 理者, 成物之文也;道者, 萬物之所以成也. 故曰:道, 理之者也. 物有理, 不可以相薄;物有理不可以相薄, 故理之爲物之制. 萬物各異理, 萬物各異理而道盡稽萬物之理, 故不得不化;不得不化, 故無常操. 無常操, 是以死生氣稟焉, 萬智斟酌焉, 萬事廢興焉. 天得之以高, 地得之以藏, 維斗得之以成其威, 日月得之以恆其光, 五常得之以常其位, 列星得之以端其行, 四時得之以御其變氣, 軒轅得之以擅四方, 赤松得之與天地統, 聖人得之以成文章. 道, 與堯·舜俱智, 與接輿俱狂, 與桀·紂俱滅, 與湯·武俱昌. 以爲近乎, 遊於四極;以爲遠乎, 常在吾側;以爲暗乎, 其光昭昭;以爲明乎, 其物冥冥. 而功成天地, 和化雷霆, 宇內之物, 恃之以成. 凡道之情, 不制不形, 柔弱隨時, 與理相應. 萬物得之以死, 得之以生;萬事得之以敗, 得之以成. 道譬諸若水, 溺者多飮之卽死, 渴者適飮之卽生;譬之若劍戟, 愚人以行忿則禍生, 聖人以誅暴則福成. 故得之以死, 得之以生, 得之以敗, 得之以成.
人希見生象也, 而得死象之骨, 案其圖以想其生也, 故諸人之所以意想者, 皆謂之象 也. 今道雖不可得聞見, 聖人執其見功以處見其形, 故曰:「無狀之狀, 無物之象」.
凡理者, 方圓·短長·麤靡·堅脆之分也, 故理定而後物可得道也. 故定理有存亡, 有死生, 有盛衰. 夫物之一存一亡, 乍死乍生, 初盛而後衰者, 不可謂常. 唯夫與天地之剖判也俱生, 至天地之消散也不死不衰者謂常. 而常者, 無攸易, 無定理. 無定理, 非在於常, 是以不可道也. 聖人觀其玄虛, 用其周行, 强字之曰 「道」, 然而可論. 故曰:「道之可道, 非常道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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