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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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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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모으는 방법 [死馬骨五百金매사마골오백금]

 

- 전국책 : 연책() -

   

연나라는 패전(敗戰)으로 황폐하게 되었다. 그때 왕위에 오른 사람이 소왕이다. 소왕은 패전의 수치를 씻기 위해 예를 갖추고 녹을 주며 인재를 초청하려 하였다.

소왕은 먼저 곽외 선생에게 상담했다.

우리 나라에서 내란이 일어났는데 그 틈을 타고 제()나라가 쳐들어와서 나라를 망쳐놓았습니다. 이 치욕을 씻고 싶은데 소국인데다 역부족이어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인재를 모으고 그들의 협력을 얻어서 수치를 씻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선생의 고견(高見)은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곽외선생이 대답했다.

(帝王)은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있는 법이고, 왕자(王者)는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으며, 패자(覇者)는 훌륭한 신하를 거느리고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멸망시키는 왕은 보잘 것 없는 머슴만 거느립니다. 인재를 초청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것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를 다하여 상대방을 받들고, 겸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보다 백 배나 훌륭한 인재가 모여들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경의(敬意)를 표하고 그 의견을 경청하면 자신보다 열 배나 훌륭한 인재가 모여들게 됩니다.

상대방과 대등하게 행동하면 자기와 엇비슷한 인간밖에 모여들지 않습니다.

좌석에 기대 앉아 막대기를 잡고 지시한다면 소인배밖에 모여들지 않습니다.

무조건 화를 내며 혼을 낸다면 노복(奴僕)들만 모여들 뿐입니다.

이상이 인재를 초빙하는 방법입니다.

지금 널리 나라 안에서 인재를 모으고, 가르침을 청하면 그 소문은 널리 퍼지게 될 것이고, 천하의 인재들이 앞다투어 모여들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가르침을 받으면 되겠소?”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어느 왕이 천금(千金)을 던져 천리마(千里馬)를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3년이 걸려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자기가 사오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은 그에게 천리마를 구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때부터 석 달 후, 그 사람은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아내어 달려가 보았으나 말은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그 사람은 그 말의 머리를 5백 금에 사왔습니다. 보고를 받은 왕은 크게 노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살아 있는 말이다. 죽은 말의 머리를 5백 금이나 주고 사오는 바보가 어디 있나!’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죽은 말 조차도 5백 금을 주고 샀습니다. 살아있는 말이라면 틀림없이 더 많은 돈을 주고 살 것이라는 소문이 날 것입니다. 천리마는 사방에서 모여들 것입니다.’

과연 1년도 안 되어 천리마가 세 마리나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왕께서도 진심으로 인재를 초청하고 싶으시거든 우선 저부터 발탁하십시오[先始於嵬]. 저와 같은 자를 높이 쓰시면, 저보다 훌륭한 인물들이 천리 길을 멀다 않고 모여들 것입니다.”

소왕은 저택을 지어 곽외에게 주고, 스승으로 받들면서 가르침을 받기로 하였다. 그러자 위()나라에서는 악의가, 제나라에서는 추연이, 조나라에서는 극신이 찾아 왔고 인재들이 속속 연나라에 모여들었다. 소왕은 전사자를 추모하고, 생존자의 안부를 물으며, 기쁨과 슬픔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었다. 이렇게 하기를 28. 국력은 충실해졌고 충분히 휴식을 한 병졸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연나라는 악의를 총대장으로 삼고, 주위의 여러 나라와 동맹을 맺어 함께 제나라에 쳐들어갔다. 제나라는 무너졌고 제나라의 민왕은 국외로 도망하였다. 연나라는 단독으로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제나라 도읍 임치에 입성하자 제나라의 보물을 모두 탈취하고 궁전과 종묘를 불태웠다. 제나라 성() 중 항복하지 않은 곳은 거와 즉묵 두 곳 뿐이었다.

 

- 戰國策 : 燕策() -

燕昭王收破燕後卽位, 卑身厚幣, 以招賢者. 欲將以報讎, 故往見郭隗先生曰:“齊因孤國之亂, 而襲破燕, 孤極知燕小力少, 不足以報. 然得賢士與共國, 以雪先王之耻, 孤之願也. 敢問以國報讎者奈何?”

郭隗先生對曰:“帝者與師處, 王者與友處, 霸者與臣處, 亡國與役處. 詘指而事之, 北面而受學, 則百己者至; 先趨而後息, 先問而後嘿, 則什己者至; 人趨己趨, 則若己者至; 馮几據杖, 眄視指使, 則厮役之人至; 若恣睢奮擊, 呴藉叱咄, 則徒隸之人至矣.

此古服道致士之法也. 王誠博選國中之賢者, 而朝其門下, 天下聞王朝其賢臣, 天下之士, 必趨於燕矣. 昭王曰:“寡人將誰朝而可?”

郭隗先生曰: 臣聞古之君人, 有以千金求千里馬者, 三年不能得, 涓人言於君曰: ‘請求之.’ 君遣之. 三月得千里馬, 馬已死, 買其首五百金, 反以報君. 君大怒曰: ‘所求者生馬, 安事死馬而捐五百金?’ 涓人對曰: ‘死馬且買之五百金, 況生馬乎? 天下必以王爲能市馬, 馬今至矣.’ 於是不能期年, 千里之馬至者三.

今王誠欲致士, 先從隗始; 隗且見事, 況賢於隗者乎? 豈遠千里哉!”

於是昭王爲隗築宮而師之. 樂毅自魏往, 鄒衍自齊往, 劇辛自趙往, 士爭湊燕. 燕王弔死問生, 與百姓同其甘苦. 二十八年, 燕國殷富, 士卒樂佚輕戰, 於是遂以樂毅爲上將軍, 與秦··三晉合謀以伐齊, 齊兵敗, 閔王出走於外. 燕兵獨追北, 入至臨淄, 盡取齊寶, 燒其宮室宗廟. 齊城之不下者, 唯獨莒·卽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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