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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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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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삼략(六韜三略)에 대하여

 

 「六韜三略이란 육도(六韜)와 삼략(三略)을 묶어 부르는 말로 도략(韜略)이라고도 한다.

  육도와 삼략은 중국 고대 병서의 최고봉인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의 둘이다. 무경칠서란 주나라 손무가 쓴 손자, 전국시대 오기의 오자, 제나라 사마양저의 사마법, 주나라 위료의 위료자, 당나라 이정의 이위공문대, 한나라 황석공의 삼략, 주나라 태공망의 육도를 말한다.

 「六韜의 도()는 활이나 검 따위의 무기를 넣는 주머니, 싸는 것, 수장하는 것을 말하며, 전하여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비법이라는 뜻에서 여섯 가지 병법의 비결을 의미한다. 문도·무도·용도·호도·표도·견도 등 66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경칠서 중에서 다른 병서들은 전법·병기·지형 등 군사부문에 국한하고 있으나 육도는 치세의 대도에서부터 인간학·조직학, 정전과 인륜을 논하고 있으며 민중 본위의 노장철학이 깃들어 있다.

  주나라의 태공망(太公望)의 저서라고 전하나 후세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 한서 예문지에 주사육도라는 책이름이 있어 이것을 육도와 동일시하는 설도 있었으나 지금까지 학설로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三略의 략()은 책략 또는 모략을 뜻하며, 상략·중략·하략의 3편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상, , 하는 책략의 등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편, 중편, 하편의 의미이다.

  무경칠서 중 가장 간결한 병서로 사상적으로는 노자의 영향이 강하나 유가·법가의 설도 상당히 섞여 있다.

  이것도 태공망의 저서라는 설과, 한나라의 지장 장량(張良)이 전설적인 은자인 황석공(黃石公)에게서 받았다는 설도 있으나 후한에서 수나라 무렵에 성립된 것으로 후세 사람이 황석공의 이름을 빌어 지어낸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작자가 누구이든 육도삼략 속에는 만세에 변치 않을 내용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두고 존중되어 왔던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얻을 것을 얻으면 되지 않겠는가.

 

육도에 대하여

  중국의 병법서로 유명한 六韜는 전설상으로 주나라의 태공망이 지은 것이라고 전해오며, 책이름이 육도라고 된 것은, 그 속에 문도, 무도, 용도, 호도, 표도, 견도의 여섯 권이 있기 때문이다.

  도()란 원래 황이나 검 따위를 싸는 주머니를 뜻하는 것인데, 전하여 깊이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을 이루고, 다시 또 전하여 비결이라는 뜻을 이룬다. 그러므로 육도란 여섯 가지의 비결이라는 뜻이 된다.

  이 책에 대해서 문헌에 나타난 것을 보면, 양나라 유중용의 자초에, 태공의 육도 6권이라고 되었고, 수서의 경적지에는 태공의 육도 5권이라고 되었으며, 다시 당서의 예문지에 육도 6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의 육도는 그 내용으로 보아 태공망의 저술로는 볼 수 없거니와 문헌에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한대 이전부터 전해오던 육도와 제자의 학설을 모아 후한이나 그 후 위진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북송 때인 원풍 연간에 육도, 삼략, 손자, 오자, 사마법, 위료자, 이위공문대를 무경칠서로 결정하였는데, 그 중 다른 병서나 귀곡자 등엔 거의 모두가 천지, 음양, 전법, 병기, 지형 등 군사 부문에만 한하여 있는 데 반하여, 이 육도는 치세의 대도로부터 인간학, 조직학에 논급하고 정전 및 인륜을 논한 것이 특색이다.

  모두 60장으로 되어 있는데, 문도와 무도 17장은 나라를 다스리는 문무의 대법을 논하였고, 용도 이하의 43장은 병법 전술을 논하였는데, 이 병법은 많은 칭찬을 받아왔다. 특히 문무의 2도에 있어서는 민중 본위의 노장 사상다운 철학이 깃들여 현대 감각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태공망(太公望)

  태공망은 본명이 강상(姜尙)이고, 그의 선조가 여()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여상(呂尙)이라 불렸다. 속칭 강태공으로 알려져 있다. 주나라 문왕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을 도와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그 공으로 제나라에 봉해져 그 시조가 되었다.

  동해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으나, 위수 가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문왕을 만나게 되었다는 등 그에 대한 전기는 대부분이 전설적이지만, 전국시대부터 한나라 시대에는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로서의 그의 재주가 회자되기도 하였다. 병서 육도(6)는 그의 저서라 하며, 뒷날 그의 고사를 바탕으로 하여 낚시질하는 사람을 태공망 혹은 태공이라 하는 속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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