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秦瓊] () 나라 말기에 당 고조(唐高祖)에 귀부(歸附)한 뒤 진왕(秦王; 太宗)을 도와 왕세충(王世充) 등을 토벌한 공로로 익국공(翼國公)에 봉해졌다. <舊唐書 卷68>

진경[晉卿] () 나라 때의 문신인 황진(黃溍)의 호이다.

진경[秦京] 진 나라 서울 장안(長安)이다.

진경[眞經] 진경은 노자(老子장자(莊子열자(列子) 등 도교(道敎)의 책을 가리킨다.

진경외일[晉卿畏日] 진경은 춘추 시대 진() 나라의 정경(正卿)이었던 조순(趙盾)을 가리키는데, 좌전(左傳) 문공(文公) 7년에 조최(趙衰)는 겨울날의 태양이요, 조순은 여름날의 태양이다.”라고 한 주에 겨울의 태양은 사랑스럽고, 여름의 태양은 두렵다.[冬日可愛 夏日可畏]”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진계경[陳季卿] 어느 시대 사람인지는 자세하지 않으나, 이문실록(異聞實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강남(江南) 지방에 살았던 진계경이 일찍이 진사(進士)에 응시했으나 낙제하고는 10년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청룡사(靑龍寺)에서 종남산옹(終南山翁)을 만났다. 그런데 마침 동각(東閣)의 벽()에 환영도(寰瀛圖)가 있는 것을 보고 진계경이 자기 고향 강남 길을 찾으면서 길게 탄식하며 어떻게 하면 배를 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꼬.”하자, 종남산옹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집에 가기는 어렵지 않다.”하고, 즉시 댓잎[竹葉]으로 배를 만들어 환영도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진계경이 이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점차 위수(渭水)에 물결이 일고 그 죽엽선(竹葉船)이 점점 커지므로, 이에 그 배를 타고 10여 일 만에 자기 집에 당도하였다. 그랬다가 하룻밤에는 다시 그 배를 타고 옛 길을 따라 가서 다시 청룡사에 들르니, 종남산옹이 아직껏 그대로 앉아 있으므로, 진계경이 종남산옹에게 이것이 꿈이 아니냐고 묻자, 종남산옹이 말하기를 “60일 뒤에 절로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후 과연 진계경의 처자(妻子)가 강남에서 달려와 진계경이 세상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아무 날 밤에 집에 돌아와서 서재(西齋)에 시()를 써 놓았다.”고 하므로, 진계경이 그제서야 비로소 꿈이 아닌 줄을 알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