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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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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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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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몽매하면 논쟁이 일어난다

 

- 한비자 제41편 문변 [1] -

 

어떤 사람이 물었다.

변론은 어찌하여 일어나는가.”

대답은 이렇다.

군주의 총명치 못한 데서 비롯된다.”

다시 물었다.

군주의 총명치 못한 데서 어찌하여 그것이 비롯되는가.”

대답은 이렇다.

현명한 군주가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군주의 명령은 말 가운데서 가장 귀중한 것이며, 법률에 의한 행위는 행위 가운데서 가장 정당한 것이다. 말에는 명령 외에 귀중한 것이 없으므로, 귀중한 것은 두 개가 있을 수 없으며, 행위에는 법률에 의한 행위 외에 정당한 것이 없으므로, 정당한 것도 두 가지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언행을 통하여 법률과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반드시 엄벌하고, 의지해야 할 법률과 명령이 없더라도 외적의 흉계를 잘 처리하고, 국내의 사고를 잘 처리하며, 이익을 가져오고, 일을 하려는 자가 있으면 군주는 반드시 그 진언을 채택하여 실행하게 하며, 과연 진언대로 결과가 나오면 크게 상을 주고, 만일 그 진언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중벌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매한 자는 벌을 무서워하여 경솔하게 말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도 함부로 군주에게 상소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논쟁도 일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난세가 되면 그렇지 않다. 군주가 명령을 해도 백성은 자기 학문에 의해서 그것을 비난하고, 정부가 법령을 공포하면 백성은 제멋대로 법률을 어기게 된다. 그런데, 군주는 오히려 법률과 명령을 약화시키는 자의 학문을 존중한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은 학문을 더욱 중시하게 된다.

대체로 언행이란 것은 실제로 유익함을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가령 화살을 무턱대고 발사하면 그 화살이 때로는 가을에 자라난 짐승의 털에 맞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활의 명수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일정한 표적이 없기 때문이다. 직경 다섯치의 표적을 앞에 두고 십보의 거리에서 활을 쏘면 예나 봉몽과 같은 명사수가 아니고는 반드시 명중시키지 못하는 것은 일정한 표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정한 표적이 있으면 예나 봉몽이 다섯치의 표적을 맞추는 교묘한 사수라고 말하며, 일정한 표적이 없으면 무턱대고 화살을 쏘아 가을에 자라난 짐승의 털에 맞았다고 하더라도 서투른 사수라고 하는 것이다.

가령 한 군주가 신하의 말을 듣고 그 행실을 검토할 경우, 실제로 필요한 바를 표적으로 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말에 지적인 깊이가 있고, 그 행위에 강한 의지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턱대고 지껄인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난세에 처하여 남의 말을 들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우면 지적이며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박식함을 자랑하는 이야기일 경우에는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행실을 볼 경우에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는 자를 현인이라 생각하고, 위를 향하여 반항하는 자를 고상하다고 한다. 그리고 군주는 변설이 상쾌하며 깊이 있는 논의를 좋아하고, 현명하고 고상하게 보이는 행동을 존경하게 된다. 그래서 법술의 인물이 해야 될 행위와 해서는 안 될 행위를 명확히 하고, 정중한 말을 사용할 때와 논쟁할 때를 구별하여 설득해도 아무도 그것을 옳다고 여기지 않는다. 유학자의 옷을 입은 공부하는 사람과 검을 허리에 찬 협객이 많아지고 경작과 전투에 참여하는 농민과 병사가 적어지며, 단단하고 흰 돌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는 등, 또 두께는 없어도 넓이는 있다는 등 쓸데없는 설이 유행하게 되어 법령은 타락된다. 그래서 군주가 총명하지 못하면 논쟁이 일어난다고 한 것이다.”

 

- 韓非子 第41篇 問辯 [1] -

或問曰:「辯安生乎?對曰:「生於上之不明也.問者曰:「上之不明, 因生辯也, 何哉?

對曰:「明主之國, 令者, 言最貴者也法者, 事最適者也. 言無二貴, 法不兩適, 故言行而不軌於法令者必禁. 若其無法令而可以接詐·應變·生利·揣事者, 上必采其言而責其實. 言當, 則有大利不當, 則有重罪. 是以愚者畏罪而不敢言, 智者無以訟. 此所以無辯之故也. 亂世則不然, 主上有令, 而民以文學非之官府有法, 民以私行矯之. 人主顧漸其法令而尊學者之智行, 此世之所以多文學也. 夫言行者, 以功用爲之的彀者也. 夫砥礪殺矢而以妄發, 其端未嘗不中秋毫也, 然而不可謂善射者, 無常儀的也. 設五寸之的, 引十步之遠, 非羿·逢蒙不能必中者, 有常也. 故有常, 則羿·逢蒙以五寸的爲巧無常, 則以妄發之中秋毫爲拙. 今聽言觀行, 不以功用爲之的彀, 言雖至察, 行雖至堅, 則妄發之說也. 是以亂世之聽言也, 以難知爲察, 以博文爲辯其觀行也, 以離群爲賢, 以犯上爲抗. 人主者說辯察之言, 」 「之行, 故夫作法術之人, 立取舍之行, 別辭爭之論, 而莫爲之正. 是以儒服·帶劍者衆, 而耕戰之士寡堅白無厚之詞章, 而憲令之法息. 故曰上不明, 則辯生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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