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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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飮酒二十首[其十七]음주20수17 / 길에 맡기면 통하리라
- 陶淵明[도연명] -
幽蘭生前庭[유란생전정] 그윽한 난초 앞뜰에 자라나
含薰待淸風[함훈대청풍] 향기 품고 맑은 바람 기다리네
淸風脫然至[청풍탈연지] 맑은 바람 건듯 불어오니
見別蕭艾中[현별소애중] 쑥대 속에서 올연히 드러나네
行行失故路[행행실고로] 가고 가다가 본래의 길 잃더라도
任道或能通[임도혹능통] 길에 맡기면 혹 통할 수도 있으리라
覺悟當念還[각오당념환] 깨쳤으면 의당 돌아갈 생각해야지
鳥盡廢良弓[조진폐량궁] 새를 다 잡고나면 활은 버려지는 것을
幷序병서 : 나는 한가롭게 살아 기뻐할 일이 적은데다 근래에는 밤마저 길어지는 차에, 우연찮게 좋은 술을 얻게 되어 저녁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없다. 그림자를 돌아보며 홀로 잔을 비우고 홀연히 취하곤 하는데, 취한 후에는 언제나 시 몇 구를 적어 스스로 즐겼다. 붓으로 종이에 적은 것이 꽤 되어, 말에 조리도 두서도 없지만 애오라지 친구에게 쓰게 하여 이로써 즐거운 웃음거리로 삼고자 한다[余閒居寡歡, 兼比夜已長, 偶有名酒, 無夕不飮. 顧影獨盡, 忽焉復醉.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 紙墨遂多, 辭無詮次, 聊命故人書之, 以爲歡笑爾.] <飮酒二十首 幷序>
❍ 도연명[陶淵明] 도잠(陶潛).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 송(宋:유송劉宋) 초기 사람이다. 시인이자 문학가로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시문으로 시명을 얻었다. 강주(江州) 심양(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량(元亮)이다. 송(宋)나라에 와서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연명(淵明)이 그의 자(字)라고도 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東晉)의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에 이르렀으며, 조부 도무(陶茂)와 부친 도일(陶逸)도 태수를 지냈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생활을 위하여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항상 전원생활을 동경한 그는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고향에 은거한 뒤에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에게 정절선생(靖節先生}이란 시호를 주어 불렀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고금의 은일시인 가운데 첫머리[古今隱逸詩人之宗]”라 평가했을 만큼 그의 시풍이 중국문학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주요 작품으로 음주(飮酒)·귀원전거(歸園田居)·도화원기(桃花源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도연명이 직접 지은 만사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다.
❍ 탈연[脫然]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 경쾌하다. 느긋하다. 느릿느릿하다. 병이 낫는 모양.
❍ 올연[兀然] 홀로 우뚝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 홀로 외롭고 우뚝한 모양. 돌연히. 우뚝한 모양. 갑자기.
❍ 소애[蕭艾] 쑥대. 쓸모없는 자. 불초자. 천한 사람. 소인.
❍ 행행[行行] 점차 나아감. 또는 그러한 모양.
❍ 각오[覺悟] 깨달음. 이치나 도리를 깨우쳐 앎. 온갖 번뇌와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앞으로 닥쳐 올 일을 미리 깨달아 마음을 작정(作定)함. 결심(決心)함.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당할 어려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함. 또는 그런 마음.
❍ 조진폐양궁[鳥盡廢良弓] 황석공(黃石公)의 삼략(三略) 중략(中略)에 이르기를, “높이 나는 새가 죽으면 좋은 활은 거두어지고, 적국이 멸망하면 계략을 꾸민 신하는 죽게 된다[高鳥死, 良弓藏, 敵國滅, 謀臣亡.]”라고 하였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41권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에도 월(越)나라 구천(勾踐)이 오(吳)나라와 다른 제후들을 평정하고 패왕(覇王)으로 칭해지자, 범려(范蠡)가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에 가서 대부(大夫) 문종(文種)에게 편지를 써서 말하기를 “나는 새가 모두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두어 보관하게 되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다. 월왕(越王)은 목이 길고 새의 부리와 같은 입을 가졌으니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대는 어찌 떠나지 않는가[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為人 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라고 하였다. 문종은 얼마 뒤에 참소를 받고 구천이 보낸 검으로 자결하였다. 범려는 구천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뒤에 보물들을 싸서 곧장 배를 타고 떠나 제(齊)나라로 갔는데, 제나라에서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이름으로 바꾸고 수십만 거금의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 사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한신(韓信)이 초왕(楚王)에 봉해진 뒤, 한 고조(漢高祖)에게 사로잡혀 끌려 갈 적에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꾀 많은 토끼가 죽으면 날쌘 사냥개가 삶겨 죽고, 높이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이 벽장 속에 감춰지고, 적국이 격파되면 모신이 죽는다고 하였는데, 지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果若人言! 狡兎死, 良狗烹; 高鳥盡, 良弓藏; 敵國破, 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亨.]”라고 하였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조사궁장(鳥死弓藏). 조진궁장(鳥盡弓藏). 적파신망(敵破臣亡). 국파신망(國破臣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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