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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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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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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酌酒與裵迪[작주여배적] 배적에게 술을 따르며

 

- 王維[왕유] -

 

酌酒與君君自寬[작주여군군자관] 친구여 술이나 한 잔 드시게

人精翻覆似波瀾[인정번복사파란] 인정은 물결같이 뒤집히는 것

白首相知猶按劍[백수상지유안검] 오래 사귄 벗이 외려 경계하고

朱門先達笑彈冠[주문선달소탄관] 먼저 출세하고는 이끌지 않네

草色全經細雨濕[초색전경세우습] 풀빛 덮인 길 보슬비에 젖는데

花枝欲動春風寒[화지욕동춘풍한] 꽃 피려는 가지에 봄바람 차네

世事浮雲何足問[세사부운하족문] 뜬구름 같은 세상 말해 무엇해

不如高臥且加餐[불여고와차가찬] 한가롭고 배부르면 그만인 것을

 


왕유[王維] 성당(盛唐)의 대표적 시인. 개원(開元), 천보(天寶) 연간의 최고 시인이었다. 산서성(山西省) 기현인(祁縣人)으로 자()는 마힐(摩詰)이다. 서화와 음악에 모두 조예가 깊었다. 중국 자연시인의 대표로 꼽히며 남종화의 창시자로 불린다. 만년에 장안의 남쪽 남전현(藍田縣)에 있는 망천(輞川) 별장에 은거하며 역관역은(亦官亦隱)의 거사적 삶을 살았다. 그의 시는 명정청신(明淨淸新)하고 정미아치(精美雅致)하며 초속탈진(超俗脫塵)하다. 객관적이고 고요한 서경(敍景)뿐만 아니라 송별시·궁정시 분야에서도 뛰어났다. 이백(李白두보(杜甫)와 함께 당나라의 대시인이었고,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로 칭하며 불교에 심취한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시불(詩佛)이라고 일컬어진다.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을 때 죽었기 때문에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불린다. 소식(蘇軾)은 당대(唐代) 산수전원시파(山水田園詩派)를 대표하는 그에 대해 마힐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고 하였다. 산수시(山水詩)에서 큰 성취를 보여 맹호연(孟浩然)과 병칭하여 왕맹(王孟)이라 일컬어진다. 저서로 왕우승집(王右丞集) 10권이 있다. 구당서(舊唐書) 왕유전(王維傳)왕유는 형제가 모두 부처를 받들었고, 언제나 채식을 했으며 매운 것과 육식을 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오랫동안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살았으며 무늬나 색깔 있는 옷을 입지 않았다[維兄弟俱奉佛, 居常蔬食, 不茹葷血, 晩年長齋, 不衣紋彩.]”고 기록되어 있다.

작주[酌酒] 술잔에 술을 따름

자관[自寬] 스스로를 위로하다. 자위하다. 자기에게 관대함.

안검[按劍] 칼을 빼려고 칼자루에 손을 댐. 사기(史記) 83 추양열전(鄒陽列傳)명월주(明月珠)나 야광벽(夜光璧)을 캄캄한 밤에 도로에서 사람에게 던져 주면 칼자루를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까닭 없이 구슬이 앞에 이르렀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에서 온 것이다.

주문[朱門] 붉은 칠을 한 문. 지위(地位)가 높은 벼슬아치의 집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

선달[先達]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였으나 아직 벼슬하지 않은 사람.

탄관[彈冠] 갓의 먼지를 턴다는 뜻으로,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려고 서둘러 준비한다는 말이다. “왕길(王吉)이 관직에 임명되자, 친구인 공우(貢禹)도 덩달아 갓의 먼지를 털고 벼슬길에 나갈 준비를 했다[王陽在位 貢公彈冠]”라는 말이 한서(漢書) 72 왕길전(王吉傳)에 나온다.

전경[全經] 모조리 겪음.

가찬[加餐] 음식물(飮食物)을 많이 먹음. 식사(食事)를 잘함. 몸을 소중(所重)히 함. 조섭(調攝).

고와[高臥] 벼슬하지 않고 시골에 물러나 편히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속세의 정을 끊고서 뜻을 고상하게 가지고 지내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사안(謝安)이 몇 차례나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채 동산에 높이 누워[高臥東山] 지냈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진서(晉書) 사안전(謝安傳)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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