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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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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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雨輞川莊作[적우망천장작] 장마철 망천 별장에서

 

- 王維[왕유] -

 

積雨空林煙火遲[적우공림연화지] 장맛비 빈숲에 연기 슬슬 오르더니

蒸藜炊黍餉東菑[증려취서향동치] 명아주국 기장밥 동쪽 밭에 내가네

漠漠水田飛白鷺[막막수전비백로] 넓디넓은 논에는 하얀 백로가 날고

陰陰夏木囀黃鸝[음음하목전황리] 여름나무 그늘에선 꾀꼬리가 우짖네

山中習靜觀朝槿[산중습정관조근] 산속에서 고요 익혀 무궁화 바라보고

松下淸齋折露葵[송하청재절로규] 소나무 아래 마음 씻고 아욱을 뜯네

野老與人爭席罷[야로여인쟁석파] 시골노인 남들과 자리다툼 관뒀건만

海鷗何事更相疑[해구하사경상의] 갈매기는 어찌 나를 아직도 의심하나

 


왕유[王維] 성당(盛唐)의 대표적 시인. 개원(開元), 천보(天寶) 연간의 최고 시인이었다. 산서성(山西省) 기현인(祁縣人)으로 자()는 마힐(摩詰)이다. 서화와 음악에 모두 조예가 깊었다. 중국 자연시인의 대표로 꼽히며 남종화의 창시자로 불린다. 만년에 장안의 남쪽 남전현(藍田縣)에 있는 망천(輞川) 별장에 은거하며 역관역은(亦官亦隱)의 거사적 삶을 살았다. 그의 시는 명정청신(明淨淸新)하고 정미아치(精美雅致)하며 초속탈진(超俗脫塵)하다. 객관적이고 고요한 서경(敍景)뿐만 아니라 송별시·궁정시 분야에서도 뛰어났다. 이백(李白두보(杜甫)와 함께 당나라의 대시인이었고,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로 칭하며 불교에 심취한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시불(詩佛)이라고 일컬어진다.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을 때 죽었기 때문에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불린다. 소식(蘇軾)은 당대(唐代) 산수전원시파(山水田園詩派)를 대표하는 그에 대해 마힐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고 하였다. 산수시(山水詩)에서 큰 성취를 보여 맹호연(孟浩然)과 병칭하여 왕맹(王孟)이라 일컬어진다. 저서로 왕우승집(王右丞集) 10권이 있다. 구당서(舊唐書) 왕유전(王維傳)왕유는 형제가 모두 부처를 받들었고, 언제나 채식을 했으며 매운 것과 육식을 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오랫동안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살았으며 무늬나 색깔 있는 옷을 입지 않았다[維兄弟俱奉佛, 居常蔬食, 不茹葷血, 晩年長齋, 不衣紋彩.]”고 기록되어 있다.

공림[空林] 나뭇잎이 떨어져 공허(空虛)한 숲. 인가(人家)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閑寂)한 숲.

연화[煙火] 사람의 집에서 불 때는 연기(煙氣). 불에 익힌 음식, 즉 숙식(熟食)하는 사람들이 사는 속세를 뜻함.

조근[朝槿] 끝없이 피는 꽃이란 뜻의 무궁화(無窮花)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옛부터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 꽃(朝開暮落花조개모락화)으로 여겨 조근(朝槿)이라 불렀다. 무궁화는 이른 아침에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가 저녁이면 수줍은 듯 여미며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노규[露葵] 아욱과()에 속한 한두해살이풀. 키는 60~90센티미터 정도이고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백색 또는 담홍색의 작은 꽃이 핀다. 잎은 둥글며 어긋나는데 다섯 갈래로 갈라져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어린순과 잎을 따서 국을 끓여 먹으며, 씨를 약으로 쓰기도 한다.

청재[淸齋] 몸을 깨끗이 하며 행동을 삼감. 깨끗이 재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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