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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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사광무옥[思光無屋] 사광은 남제(南齊) 때의 장융(張融)을 이름이다. 사광은 그의 자이다. 장융은 매우 가난하여 거주할 집도 없었으므로, 조그마한 배를 끌어다 놓고 안상(岸上)에 거주했다고 한다. <南齊書 卷四十一>
❏ 사괴[絲蒯] 사마(絲麻)와 관괴(菅蒯)이다.
❏ 사구[沙丘] 지금의 하북성 형태시(邢台市) 동족의 평향현(平鄕縣)이다.
❏ 사구[司寇] 춘추전국 시대 때 관직이름으로 주로 관리의 규찰과 형옥을 담당한 관서의 장(長)을 말한다.
❏ 사구유[沙丘囿] 주왕(紂王)이 사구(沙丘)에다 꾸며둔 유원지. 주왕이 사구에다 원(苑)을 크게 꾸미고 누대를 세워 주지육림(酒池肉林)을 하여두고는 밤이면 남녀가 모여 옷을 벗고 나체로 서로 즐기게 했던 곳이다. <史記 殷本紀>
❏ 사구지란[沙丘之亂] 무령왕의 원래 태자는 조장(趙章)이었으나 작은아들 하(何)를 총애하여 장을 폐하고 하를 세웠다. 하가 조혜문왕(趙惠文王)이다. 곧이어 무령왕 자신은 나라 밖의 일에 전념하겠다는 구실로 조왕의 자리를 하(何)에게 넘겨주고 스스로는 주보(主父)라고 칭했다. 후에 무령왕이 마음이 바뀌어 조나라를 둘로 나누어 장(章)을 대왕(代王)에 임명하려고 했으나 측근의 반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장이 그 소식을 듣고 무령왕이 혜문왕과 함께 사구(沙丘)에 있던 행궁에 행차한 틈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켜 혜문왕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장은 목숨을 구하여 무령왕의 숙소로 피했다가 조성(趙成)과 이태(李兌)에게 잡혀 살해되고 이어서 후환을 두려워한 두 사람은 사구궁을 포위하여 무령왕을 석 달만에 굶어 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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