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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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別房太尉墓[별방태위묘] 방태위 묘에 고별하며
- 杜甫[두보] -
他鄕復行役[타향부행역] 타향에서 또 다시 먼 길 떠나며
駐馬別孤墳[주마별고분] 말 세워 외로운 무덤에 고별하네
近淚無乾土[근루무건토] 근처는 눈물로 마른 흙이 없고
低空有斷雲[저공유단운] 나직한 하늘엔 조각구름 걸렸네
對棋陪謝傅[대기배사부] 대국 때 사태부 모신 듯했는데
把劍覓徐君[파검멱서군] 칼 들고 서군 무덤 찾듯이 뵈니
唯見林花落[유견림화락] 오직 수풀에 지는 꽃만 보이고
鶯啼送客聞[앵제송객문] 나그네 보내는 꾀꼬리 울음소리
<別房太尉墓별방태위묘 / 태위 방관의 묘를 떠나며 / 杜甫두보 : 唐詩三百首당시삼백수>
❍ 방태위[房太尉] 방관(房琯)을 가리킨다. 자(字)는 차율(次律)로 하남(河南: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언사偃師 구씨진緱氏鎭) 사람이다. 현종(玄宗)이 안녹산의 난으로 촉(蜀)으로 피난 갈 때 재상이 되었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원년(元年) 6월, 진도사(陳濤斜)의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빈주자사(邠州刺史)로 폄직되었다.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 보응(寶應) 2년 특진되어 형부상서(刑部尙書)가 되었는데, 객지에서 병이 들어 낭주(閬州: 지금의 泗川省사천성 閬州縣낭주현)의 절에서 광덕(廣德) 원년(元年) 8월에 세상을 떠났다. 방관의 장자(長子)는 두 눈이 멀었고 첩 소생의 자식은 아직 어려, 방관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무덤이 적막했다고 한다. 향년 67세로 사후 태위(太尉)로 추증(追贈)되었다. 국사보(國史補)에 “재상 가운데 장곡강(張曲江: 장구령張九齡) 이후 방태위와 이양공(李梁公)이 덕이 두터웠다고 말한다[宰相自張曲江以後 稱房太尉李梁公爲重德]”라고도 하였다. 명재상이었을 뿐 아니라 두보(杜甫)와 동향(同鄕) 지기(知己)로 포의(布衣) 때부터 우정을 나눈 사이이며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다. 두보(杜甫)는 방관의 추천으로 조정에 들어갈 수 있었고, 방관을 구하려다 숙종에게 죄를 얻어 화주(華州)로 폄직(貶職)된 적도 있었다. 두보(杜甫)와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눈 벗이 바로 이백(李白)과 방관으로 이 둘과 관계된 시가 두보(杜甫) 시에 자주 보인다.
❍ 행역[行役] 복역(服役)이나 공무(公務)로 인해 원행(遠行)함. 사명(使命)을 띠고 외국(外國)으로 가거나 출전(出戰)함. 국가의 사명(使命)으로 집을 떠나 봉사(奉仕)하는 것을 말한다. 사행(使行).
❍ 행역[行役] 군역(軍役), 노역(勞役), 또는 공무(公務)로 외지를 돌아다니는 일. 시경(詩經) 위풍(魏風) 척호(陟岵)의 “아, 내 아들 전장에 나가 밤낮으로 쉴 새 없네[嗟予子行役夙夜無已]”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관명(官命)에 따라 나라의 토목공사나 군사(軍事) 등 공무로 인해 타향에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 단운[斷雲] 조각구름. 조각조각 끊어진 구름. 여러 개의 조각으로 끊어진 듯이 떠 있는 구름.
❍ 대기[對棋] 맞바둑.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두는 바둑.
❍ 사부[謝傅] 사태부(謝太傅). 사부(謝傅)는 남조(南朝)의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자는 안석(安石), 호는 동산(東山)이며 동진(東晉)의 정치가이자 군사가로 절강(浙江) 소흥(紹興) 사람이다. 사후(死後)에 태부(太傅)로 추증(追贈)되었으므로 사부(謝傅)라 하였다. 사상(謝相), 사공(謝公) 등으로도 부른다. 진서(晉書) 사안전(謝安傳)에 동진(東晉)이 전진(前秦)의 부견(符堅)과 비수(淝水)에서 대전(大戰)을 벌일 때 사안(謝安)은 나그네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동진군의 승전보가 전해졌는데도 사안은 전혀 희색을 띠지 않고 침착하게 있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 서군[徐君] 서국(徐國)의 국군(國君). 오(吳)나라 계찰(季札)의 고사 계찰괘검(季札掛劍)에 보인다.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 “계찰이 처음 사신을 갈 때 북으로 서국(徐國) 임금에게 들렀다. 서군(徐君)이 계찰의 칼을 좋아하면서도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 계찰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으나 상국(上國)으로 사신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줄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서국(徐國)에 들렀을 때는 서군(徐君)이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이에 마침내 자신의 보검(寶劍)을 풀어 서군(徐君) 무덤가의 나무에 묶어두고 떠났다[季札之初使 北過徐君 徐君好季札劍 口弗敢言 季札心知之 爲使上國未獻 還至徐 徐君已死 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冢樹而去]”라고 하였다. 이때의 일로 서국의 사람들이 “연릉계자 옛일을 잊지 않고, 천금의 칼을 무덤 위에 풀어놓았네[延陵季子兮不忘故, 脫千金之劍兮帶丘墓.]”라고 하면서 계찰의 아름다운 행위를 찬미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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