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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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釣臺[조대] 낚시터
- 戴復古[대복고] -
萬事無心一釣竿[만사무심일조간] 만사에 무심하면 낚싯대 하나면 되니
三公不換此江山[삼공불환차강산] 삼공과도 이 강산은 바꾸지 않으려네
平生誤識劉文叔[평생오식류문숙] 평생에 유문숙을 잘못 사귀는 바람에
惹起虛名滿世間[야기허명만세간] 온 세상에 허명만 야기했을 뿐이라네
※ 이 시는 후한(後漢)의 은사(隱士) 엄광(嚴光)의 고사를 소재로 읊은 시라 한다.
❍ 대복고[戴復古] 남송(南宋) 천태(天台) 황암(黃巖: 현재의 저장浙江 태주台州) 사람이다. 강호시파(江湖詩派)의 시인(詩人)이자 사인(詞人)으로 자는 식지(式之), 호는 석병(石屛)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배우지 못하다가 장성하여 독서에 분발하였다. 평생 벼슬하지 않고 강호를 떠돌며 산수를 즐기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강남의 산봉우리와 물가를 두루 다녔는데 스스로 ‘사해를 미친 듯 유람하며 줄곧 집을 잊었다[狂游四海, 一向忘家.]’고 하였다. 그는 ‘공명이 반드시 농어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다[功名未必勝蘆魚]’라고 여겼으며, 천성이 자유롭고 방달(放達)하였다. 일찍이 임경사(林景思)와 교유하였고, 육유(陸游)에게 시를 배웠으며, 강서시파(江西詩派)와 만당(晩唐)의 시풍에 영향을 받았다. 강호(江湖)의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고 자기의 작시(作詩) 태도와 방법을 읊은 7언절구 10수를 남겼는데, 이를 논시십절(論詩十絶)이라 한다. 그로 인하여 원호문(元好問)과 함께, 두보(杜甫)의 논시(論詩)를 이은 양대지맥(兩大支脈)을 형성하였다. 만년에는 고향 석병산(石屛山)에 돌아가 은거하며 여든을 넘길 때까지 장수하였다. 작품 경향은 현실주의 색채가 강하며, 지배층의 모순을 고발한 작품도 있다. 저서에 석병신어(石屛新語)와 석병시집(石屛詩集), 석병사(石屛詞)가 있다.
❍ 엄광[嚴光] 후한서(後漢書) 엄광전(嚴光傳)에 “후한(後漢) 때의 은사 엄광(嚴光)은 어려서부터 고명(高名)이 있었으며 광무제와 함께 유학하였는데, 광무제가 즉위하자 엄광은 성명을 바꾸고 은거하여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광무제가 그의 어짊을 생각하여 그를 찾도록 명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양 갖옷을 몸에 걸치고 동강(桐江)의 늪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러자 광무제가 사신 편에 후한 예물을 보내어 초빙하기를 세 번 반복한 뒤에야 이르렀다. 이에 북군(北軍)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침상과 이부자리를 주었으며 태관(太官)은 조석으로 음식을 대접케 하였다.”라고 하였다.
❍ 엄자릉[嚴子陵] 자릉은 동한(東漢)의 은자(隱者)인 엄광(嚴光)의 자이다. 엄광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와 동학(同學)한 사이였는데, 광무제가 황제가 된 뒤에 변성명을 하고서 숨어 살았다. 광무제가 엄광을 찾아내어 조정으로 불렀으나 오지 않다가 세 번을 부른 뒤에야 겨우 나왔다. 광무제와 엄광이 함께 잠을 자던 중에 엄광이 광무제의 배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그다음 날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객성이 어좌(御座)를 범하였습니다.”라 하니, 광무제가 웃으면서 “짐이 옛 친구인 엄자릉과 함께 잤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 뒤 광무제가 조정에 머물러 있기를 권하였으나, 엄광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엄릉뢰(嚴陵瀨)라는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며 지냈다. <後漢書 卷83 嚴光列傳>
❍ 무심[無心]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생각하는 마음이 없음. 물욕(物慾)에 팔리는 마음이 없고, 또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나쁜 것에 간섭(干涉)이 떨어진 경계(境界).
❍ 삼공[三公] 천자를 보위하는 신하로서의 최고 직위. 시대에 따라 명칭이 달랐는데, 주(周)나라 때에는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 전한(前漢) 때에는 승상(丞相)·대사마(大司馬)·어사대부(御史大夫), 또는 대사마(大司馬)·대사공(大司空)·대사도(大司徒), 후한(後漢) 이후에는 태위(太尉)·사공(司空)·사도(司徒), 원(元)·명(明)·청(淸)에서는 주(周)와 같이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를 삼공이라 하였다. 조선조에서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다.
❍ 유문숙[劉文叔] 문숙(文叔)은 후한(後漢)의 초대 황제인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자이다. 신(新) 나라 왕망(王莽)의 군대를 격파하고 후한을 세웠다. 왕망의 가혹하였던 정치를 폐지하고 전조(田租)를 인하하는 등 통일국가의 기초를 다졌으며, 후한의 특색이 되는 예교주의(禮敎主義)의 기초를 다졌다.
❍ 야기[惹起] 일이나 사건 따위를 끌어내어 일으킴.
❍ 허명[虛名] 실속이 없는 헛된 명성. 실상이 없이 헛되게 난 이름. 실제의 가치에 어울리지 않는 실질 이상의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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