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반응형

형벌은 무거워야 한다

 

- 한비자 제466[4] -

 

지금 가족이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고 하자. 어떤 집에서는 서로가 춥고 배고픔을 참고 견디며 서로가 격려하는 일을 한다. 전란이나 기근이 엄습해 올 경우에도 견디어 내는 것은 그런 가정이다. 그런데 어떤 집에서는 의식주를 풍족하게 하고 서로가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집에서는 흉년이 들면 아내를 남의 집으로 보내게 되고, 자식을 팔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으로 다스리게 되면 처음에는 고생스럽지만 나중에는 장구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법인데, 인을 가지고 다루게 되면 잠깐 동안은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고생하게 된다. 성인은 법과 인의 경중을 가려 큰 이익을 취한다. 서로가 견디어 낼 수 있는 법률을 사용하며 서로가 동정하는 인자를 버린다.

학자들은 모든 형벌을 가볍게 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국가가 약화되고 멸망하는 길인 것이다. 원래 상벌을 확실하게 시행하는 것은 백성에게 공을 세우도록 권장하고 못된 행위를 금지시키기 위해서이다. 상이 후하면 백성이 서둘게 되므로 군주가 바라는 바를 빨리 이룰 수 있고, 벌이 무거우면 백성이 두려워하므로 군주가 싫어하는 바를 금지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원래 이익을 바라는 자는 반드시 손해를 싫어하는 법이다. 손해는 이익의 반대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과 반대되면 어찌 싫어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통치를 잘하려면 반드시 반란을 미워한다. 반란은 통치의 반대이다. 그러므로 통치가 잘되게 하려면 반드시 형벌을 무겁게 해야 한다. 형벌을 가볍게 하라는 의견에 찬성하는 자는 반란을 미워하는 감정이 강하지 않으며, 통치를 바라는 마음도 강하지 못하다. 통치를 바라는 감정이 강하지 않은 자는 법술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자일 뿐 아니라, 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자이다. 군주가 현명한지 우매한지, 혹은 지혜로운지 미욱한지는 그가 시행하는 상벌의 경중에 달려 있다. 그리고 또 중형은 죄인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군주의 법은 죄를 측정하고 조사하는 데에 특색이 있다. 역적을 죽이는 것은 측정하고 조사한 장본인을 처분하는 데에 있지 않다. 장본인만을 처분하는 것은 다만 죽은 자를 처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도둑을 처형하는 것은 그 자를 처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자만을 처형한다는 것은 이미 체포되고 죄인이 된 자를 처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악인의 죄를 무겁게 하여 전 국민이 못된 일을 하지 않도록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나라를 통치하는 방법이다. 중벌로 처단되는 것은 한 도둑이지만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백성이다. 그래서 국가의 통치를 바라는 자는 중형의 효과에 대해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상을 후하게 하는 이유를 검토해 보면 다만 한 사람의 공만을 포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격려하는 데에 뜻이 있다. 상을 받는 자는 그 이익을 기뻐하며, 또 상을 받지 못한 자는 상을 받으려 노력한다. 이것은 한 사람의 공로에 보답함으로써 나라 안의 모든 백성을 격려하는 것이 되므로 국가 통치를 원활하게 하려는 자는 상을 후하게 주는 그 효과에 대해서 항상 유의해야 되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가 이렇게 말한다.

형을 무겁게 하면 백성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만, 형을 가볍게 해도 악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중형을 가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말을 하는 자는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자이다. 중형을 가한다고 해서 악사를 멈추는 자가, 가벼운 벌을 준다고 해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벼운 형 때문에 하지 않는 자는 중형을 가하게 되면 반드시 그만두는 법이다. 그래서 위에 있는 자가 중형을 제정하면 못된 짓은 없어지기 마련이다. 못된 짓이 없어지는데 그것이 어찌 백성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되겠는가. 이른바 중형이란, 악인의 얻음을 근소하게 하고 위에서 가하는 형의 양을 많이 하는 일이다. 백성은 근소한 얻음 때문에 큰 형벌을 받고 싶지 않으므로, 악행은 반드시 없어진다. 이른바 가벼운 형이란, 악인의 얻음이 많은데도 위에서 가해지는 형벌을 가볍게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백성은 얻음을 많이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며, 따라서 악행도 그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은 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개미 무덤 때문에 넘어진다.

산은 크기 때문에 조심하게 되지만, 개미무덤은 작으므로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형벌을 가볍게 하면 백성은 반드시 그것을 업신여긴다. 죄를 범해도 벌하지 않는다면 나라 안의 백성을 죄 속에 몰아넣고 돌보지 않는 셈이 되는 것이다. 또 죄를 범하도록 만들어 놓고 벌하지 않으면 백성에 대해서 함정을 만들어 놓는 셈이 된다. , 형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개미무덤과 같은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벼운 형을 방침으로 하게 되면 나라를 문란하게 하거나 백성에게 함정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백성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 韓非子 第46篇 六反 [4] -

今家人之治産也, 相忍以飢寒, 相强以勞苦, 雖犯軍旅之難, 饑饉之患, 溫衣美食者, 必是家也相憐以衣食, 相惠以佚樂, 天饑歲荒, 嫁妻賣子者, 必是家也. 故法之爲道, 前苦而長利仁之爲道, 偸樂而後窮. 聖人權其輕重, 出其大利, 故用法之相忍, 而棄仁人之相憐也. 學者之言皆曰:「輕刑.此亂亡之術也. 凡賞罰之必者, 勸禁也. 賞厚, 則所欲之得也疾罰重, 則所惡之禁也急. 夫欲利者必惡害, 害者, 利之反也. 反於所欲, 焉得無惡? 欲治者必惡亂, 亂者, 治之反也. 是故欲治甚者, 其賞必厚矣其惡亂甚者, 其罰必重矣. 今取於輕刑者, 其惡亂不甚也, 其欲治又不甚也. 此非特無術也, 又乃無行. 是故決賢·不肖··知之美, 在賞罰之輕重. 且夫重刑者, 非爲罪人也. 明主之法, 揆也. 治賊, 非治所揆也所揆也者, 是治死人也. 刑盜, 非治所刑也治所刑也者, 是治胥靡也. 故曰重一姦之罪而止境內之邪, 此所以爲治也. 重罰者, 盜賊也, 而悼懼者, 良民也. 欲治者奚疑於重刑, 若夫厚賞者, 非獨賞功也, 又勸一國. 受賞者甘利, 未賞者慕業, 是報一人之功而勸境內之衆也, 欲治者何疑於厚賞? 今不知治者皆曰:「重刑傷民, 輕刑可以止姦, 何必於重哉?此不察於治者也. 夫以重止者, 未必以輕止也以輕止者, 必以重止矣. 是以上設重刑者而姦盡止, 姦盡止, 則此奚傷於民也? 所謂重刑者, 姦之所利者細, 而上之所加焉者大也. 民不以小利蒙大罪, 故姦必止者也. 所謂輕刑者, 姦之所利者大, 上之所加焉者小也. 民慕其利而傲其罪, 故姦不止也. 故先聖有諺曰:「不躓於山, 而躓於垤.山者大, 故人順之垤微小, 故人易之也. 今輕刑罰, 民必易之. 犯而不誅, 是驅國而棄之也犯而誅之, 是爲民設陷也. 是故輕罪者, 民之垤也. 是以輕罪之爲民道也, 非亂國也, 則設民陷也, 此則可謂傷民矣!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