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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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輞川閑居贈裴秀才迪[망천한거증배수재적] 망천에서 한거하는 배적에게
- 王維[왕유] -
寒山轉蒼翠[한산전창취] 차운 산은 도리어 푸른빛 띠고
秋水日潺湲[추수일잔원] 가을 물은 온종일 졸졸 흐르네
倚杖柴門外[의장시문외] 지팡이 짚고 사립문 밖에 서서
臨風聽暮蟬[임풍청모선] 바람 쐬며 듣는 저녁 매미소리
渡頭餘落日[도두여낙일] 지던 해는 나루터에 걸려 있고
墟里上孤烟[허리상고연] 마을에선 한줄기 밥 짓는 연기
復値接輿醉[복치접여취] 다시 접여와 만나 취하고 나서
狂歌五柳前[광가오류전] 다섯 버들 앞에서 부르는 광가
❍ 왕유[王維] 성당(盛唐)의 대표적 시인. 개원(開元), 천보(天寶) 연간의 최고 시인이었다. 산서성(山西省) 기현인(祁縣人)으로 자(字)는 마힐(摩詰)이다. 서화와 음악에 모두 조예가 깊었다. 중국 자연시인의 대표로 꼽히며 남종화의 창시자로 불린다. 만년에 장안의 남쪽 남전현(藍田縣)에 있는 망천(輞川) 별장에 은거하며 역관역은(亦官亦隱)의 거사적 삶을 살았다. 그의 시는 명정청신(明淨淸新)하고 정미아치(精美雅致)하며 초속탈진(超俗脫塵)하다. 객관적이고 고요한 서경(敍景)뿐만 아니라 송별시·궁정시 분야에서도 뛰어났다. 이백(李白)·두보(杜甫)와 함께 당나라의 대시인이었고,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로 칭하며 불교에 심취한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시불(詩佛)이라고 일컬어진다.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을 때 죽었기 때문에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불린다. 소식(蘇軾)은 당대(唐代) 산수전원시파(山水田園詩派)를 대표하는 그에 대해 “마힐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고 하였다. 산수시(山水詩)에서 큰 성취를 보여 맹호연(孟浩然)과 병칭하여 왕맹(王孟)이라 일컬어진다. 저서로 왕우승집(王右丞集) 10권이 있다. 구당서(舊唐書) 왕유전(王維傳)에 “왕유는 형제가 모두 부처를 받들었고, 언제나 채식을 했으며 매운 것과 육식을 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오랫동안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살았으며 무늬나 색깔 있는 옷을 입지 않았다[維兄弟俱奉佛, 居常蔬食, 不茹葷血, 晩年長齋, 不衣紋彩.]”고 기록되어 있다.
❍ 망천[輞川] 당(唐) 나라 때 시인으로 산수화에도 뛰어났던 왕유(王維)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신당서(新唐書) 권202 문예열전(文藝列傳) 왕유(王維)에 “왕유의 별장이 망천에 있는데 그 지역의 경관이 매우 좋다. 화자강(華子岡), 의호(欹湖), 죽리관(竹裏館), 유랑(柳浪), 수유반(茱萸沜), 신이오(辛夷塢) 등이 있어 배적(裴迪)과 그 속에서 놀면서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즐겼다.”라고 하였다. 왕유가 이곳에다 별장을 짓고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 20곳을 골라 각기 이름을 붙인 다음 시를 읊었는데, 세상에서는 이를 망천이십경(輞川二十景)이라고 한다. 또한 왕유가 망천의 20개의 승경을 배경으로 망천도(輞川圖)를 그렸다. <王右丞集 卷14>
❍ 배수재적[裴秀才迪] 배적(裴迪)을 이른다. 성당(裴迪)의 문관, 시인. 관중(關中) 사람. 왕유(王維), 최흥종(崔興宗) 등과 친하여 종남산(終南山)에 있으면서 시를 주고받았고, 현종(玄宗) 때 촉주자사(蜀州刺史)를 지냈다. 그의 시는 맑고 고우며 고고하다는 평이 있고 전원산수파(田園山水派) 시인이라 한다. 수재(秀才)는 당시 선비들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이다.
❍ 한산[寒山] 가을 산의 별칭. 가을이 되면 산에 한기가 있다 하여 ‘한산’이라고도 함. 초목이 시든 썰렁한 겨울의 산.
❍ 창취[蒼翠] 풀이나 나무 따위가 싱싱하게 푸름. 검푸르다. 푸르고 싱싱하다.
❍ 잔원[潺湲] 조용하고 잔잔함. 강물이 천천히 흐르는 모양. 유유히 흐르다.
❍ 도두[渡頭] 나루.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곳
❍ 복치[復値] 때 마침.
❍ 접여[接輿]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미친 것처럼 가장해 세상을 피했던 은사(隱士) 육통(陸通)의 자이다. 초나라 왕이 그가 현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기용하려 하자 성명을 바꾸고 다른 곳을 숨어버려 세상과 절연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초광(楚狂)이라 불렀다. 논어(論語) 미자(微子)편에 따르면 초(楚)나라의 광인(狂人) 접여가 공자의 앞을 지나며 “봉(鳳)이여! 봉이여! 어찌 덕이 쇠했는가. 지나간 것을 간(諫)할 수 없지만 오는 것은 오히려 따를 수 있으니,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오늘날 정치에 종사하는 자는 위험하다.”라고 노래하였다 한다.
❍ 광가[狂歌] 곡조나 가사에 맞지 않게 되는대로 마구 소리지르며 부르는 노래. 격조에 맞추지 않고 함부로 지은 노래.
❍ 오류[五柳]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잠(陶潛: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진(晉) 나라 때 도잠(陶潛)이 팽택령(彭澤令)으로 있다가 뜻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칭하며 음주와 독서로 즐겼다 한다. 도잠이 일찍이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어 자신을 말하였는데 여기에 “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집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는 스스로 오류선생이라 했다.”고 하였다. <晉書 陶潛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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