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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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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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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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遠曲[기원곡] 멀리 부치는 노래

 

- 張籍[장적] -

 

美人來去春江暖[미인래거춘강난] 고운님 오고 가던 봄 강은 따스한데

江頭無人湘水滿[강두무인상수만] 강나루엔 인적없고 상수만 넘실거려

浣紗石上水禽棲[완사석상수금서] 비단 빨던 돌 위에는 물새가 깃들고

江南路長春日短[강남노장춘일단] 강남 가는 길은 멀고 봄날은 짧구나

蘭舟桂楫常渡江[난주계즙상도강] 화려한 배는 항상 저 강을 건너건만

無因重寄雙瓊璫[무인중기쌍경당] 다시는 쌍경당을 보낼 줄 일 없구나

 


  • 장적[張籍]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字)는 문창(文昌)이다. 원적은 오군(吳郡: 소주蘇州)이지만 어렸을 때 화주(和州) 오강(烏江)으로 옮겨 살았다. 한유(韓愈)의 후원으로 정원(貞元) 15년에 진사가 되어, 태상사태축(太常寺太祝), 비서랑(秘書郞), 국자박사(國子博士) 등에 제수되었다.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 국자사업(國子司業)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므로 장수부(張水部) 또는 장사업(張司業)이라 칭하였다. 한유(韓愈),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등과 교유하였으며, 악부시(樂府詩)에 능하여 왕건(王建)과 함께 장왕악부(張王樂府)라고 칭하기까지 하였다. 현전하는 시 418수 중 70~80수가 악부시이며, 전쟁의 비정함과 전란 속에 겪는 백성들의 고난을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 새하곡(塞下曲), 정부원(征婦怨), 채련곡(采蓮曲), 강남곡(江南曲) 등이 대표작으로 전하며, 그의 작품들은 목탁집(木鐸集) 12권, 장사업집(張司業集) 8권, 장문창문집(張文昌文集) 4권 등으로 편찬되었다. 한유(韓愈)의 시 조장적(調張籍)에 “그대에게 하늘을 나는 노을을 빌려, 나와 더불어 하늘을 오르내리리.[乞君飛霞佩, 與我髙頡頏.]”라고 하였다.
  • 장적[張籍] 당(唐) 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字)가 문창(文昌)으로 화주(和州) 오강(烏江) 사람이라고도 하고, 소주(蘇州) 사람이라고도 한다. 성질이 강직하였으며 악부시(樂府詩)를 잘하였다. 맹교(孟郊)의 소개로 한유(韓愈)를 만났으며, 한유의 추천을 통해 진사가 되었다.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과 태상시태축(太常寺太祝)을 지냈다. 백거이(白居易)와 오랜 친교를 통해 서로의 창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장적이 장안(長安)에서 태상사대축(太常寺大祝)으로 있을 때 녹봉(祿俸)이 박하여 빈궁한데다가 눈병마저 앓아 거의 실명(失明)의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장안으로 돌아온 그의 벗 이고(李翶)를 통해 절동도단련사(浙東都團練使) 겸 어사중승(御史中丞) 이손(李遜)에 대해 듣고는 그에게 의탁하고자 하여, 한유에게 대신 편지를 써주기를 부탁하였다. 이에 한유(韓愈)가 눈병을 앓아 시력을 잃은 장적(張籍)을 대신하여 이손(李遜)에게 자천(自薦)하는 내용으로 쓴 편지인 대장적여이절동서(代張籍與李浙東書)에 “절수(折水)의 동쪽 7개 주(州)는 호수(戶數)가 수십만을 밑돌지 않으니, 눈이 멀지 않은 자가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중승(李中丞)께서는 인물을 취할 때 진실로 응당 어진 여부를 따질 것이지, 눈이 멀었는지 멀지 않았는지는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마음의 눈이 먼 자는 모두 이와 같은데, 저로 말하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유독 눈은 멀었지만 마음은 능히 시비를 분별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浙水東七州 戶不下數十萬 不盲者何限 李中丞取人 固當問其賢不賢 不當計盲與不盲也 當今盲于心者皆是 若籍自謂獨盲于目爾 其心則能別是非]”라고 하였다.
  • 내거[來去] 사람이나 차가 오고감. 오가다. 차이. 왕래하며 교제하다. 반복하다.
  • 강두[江頭] 강 언저리. 강가의 나룻배 타는 곳. 강가의 나루 근처. 강기슭. 강가. 강 언덕.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애강두(哀江頭)에 “강변의 궁전은 수많은 문 닫았는데, 가는 버들 새 부들 풀은 누굴 위해 푸르른가.[江頭宮殿鎖千門 細柳新蒲爲誰綠]”라고 하였고, 곡강(曲江)에 “퇴청해서는 나날이 봄옷을 전당 잡혀, 날마다 강 머리에서 실컷 취해 돌아오네.[朝回日日典春衣 每日江頭盡醉歸]”라고 하였고, 백거이(白居易)의 시 비파행(琵琶行)에 “심양의 강가 어느 날 밤 객을 전송하는데, 단풍잎 갈대꽃에 갈바람 쓸쓸하였어라.[潯陽江頭夜送客 楓葉荻花秋瑟瑟]”라고 하였다.
  • 상수[湘水] 상강(湘江). 강 이름. 광서성(廣西省) 흥안현(興安縣) 양해산(陽海山)에서 발원하여 호남성(湖南省) 소수(瀟水)와 합류한 뒤에 동정호(洞庭湖)로 들어간다. 상수는 굴원(屈原)이 간신들의 참소로 조정에서 추방되었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빠져 죽은 곳으로, 후세에서는 일반적으로 유배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노신(魯迅)의 상령가(湘靈歌)에 “옛날에는 상강의 물 푸른 비단 같다 들었는데, 오늘날 상강의 물 붉게 물들었다 하네.[昔聞湘水碧如染 今聞湘水胭脂痕]”라고 하였다. 또한 순임금이 구억산(九嶷山)으로 순수 나왔다가 그곳에서 죽자 요임금이 딸이었던 순임금의 두 부인이 상심한 나머지 상수에 빠져 죽은 전설이 있다.
  • 상수[湘水] 장강(長江)의 한 지류인 상강(湘江)을 가리킨다. 장강(長江) 유역의 동정호(洞庭湖) 수계(水系)로 호남성(湖南省) 최대 하류(河流)이다. 소수(瀟水)와 합류하여 동정호(洞庭湖)로 들어가는데 소상강(瀟湘江)이라 불리기도 한다. 고대 시문에서 상수(湘水)를 흔히 소상(瀟湘)이라고 하는데, 瀟(소)는 물이 맑고 깊은 것을 뜻한다.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간신들의 참소로 조정에서 추방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빠져 죽은 곳이다. 동방삭(東方朔)의 칠간(七諫) 애음(哀音)에 “멱라의 상수에 몸을 던지면, 추악한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리.[測汨羅之湘水兮 知時固而不反]”라고 하였다. 또한, 한(漢)의 가의(賈誼)도 이곳을 건너며 굴원을 조상하였다.
  • 완사[浣紗] 마전이나 빨래를 하는 일. 비단을 씻다. 빨래하다. 환우기(寰宇記)에 “회계현 동쪽에 서시가 비단을 씻던 바위가 있다.[會稽縣東有西施浣紗石]”라고 하였고, 수경주(水經注)에 “완사계는 형주에 있는데 이릉주 서북쪽이다. 가을과 겨울에 물빛이 맑고 아름답다.[浣紗溪在荆州, 爲吏陵州西北, 秋冬之月, 水色淨麗.]”라고 하였다.
  • 난주[蘭舟] 난주는 목란주(木蘭舟)의 준말로, 향기로운 목란(木蘭)으로 만든 배이다. 보통 작은 거룻배를 가리킬 때 쓰는 시어(詩語)이다. 춘추 시대 노반(魯般)이 목란(木蘭) 나무를 깎아 배를 만든 데서 유래하였다. 술이기(述異記)에 “목란천이 심양강 가운데 있는데 목란나무가 많아 노반이 다듬어 배를 만들었다.[木蘭川在潯陽江中 多木蘭樹 魯般刻爲舟]”는 기록이 있다. 작고 아름다운 배의 미칭(美稱)으로 쓰인다.
  • 쌍경당[雙瓊璫] 한 쌍의 옥 귀고리. 한 쌍의 구슬 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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