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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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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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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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興九首[其六]잡흥96 / 지사는 일을 사랑하나

 

- 崔惟淸[최유청] -

 

志士惜事業[지사석사업] 지사는 하는 일을 사랑하나

宵人戀珠金[소인련주금] 소인은 재물만을 생각한다네

經營兩不暇[경영양불가] 이루기에 둘 다 쉴 틈이 없고

羲和走駸駸[희화주침침] 세월은 빠르게도 내달린다네

荒壠癈百草[황롱폐백초] 황폐한 무덤 온갖 풀로 덮인데

賢愚同一沉[현우동일침] 현인 우인 하나 같이 묻히거니

何如且日飮[하여차일음] 차라리 날마다 술이나 퍼마시며

實腹而虛心[실복이허심] 배 채우고 마음은 비움이 어떤가

 


최유청[崔惟淸] 고려(高麗) 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는 직재(直哉)이고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문하시랑 최석(崔奭, 崔錫)의 아들이다. 예종 때 과거에 급제했으나 학문이 완성되지 않았다 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독서에만 힘썼다. 후에 추천을 받아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으나 인종초에 이자겸(李資謙)의 간계로 파직되었다. 이자겸이 몰락한 뒤 내시(內侍)가 되었고, 좌사간(左司諫상주수(尙州守시어사(侍御史)를 역임하였다. 1132(인종10)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으로 진주사(陳奏使)가 되어 송나라에 다녀왔다. 1142년에 간의대부(諫議大夫)로 금나라에 다녀와 호부시랑(戶部侍郎)에 제수되었고, 동북면병마부사(東北面兵馬副使승선(承宣)을 역임하였다. 1149(의종3)에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가 되고, 2년 후 왕제 대령후(大寧侯)가 참소된 사건에 처남인 정서(鄭敍)와 함께 관련되어 남경유수사(南京留守使)로 좌천되고, 6년 뒤 충주목사(忠州牧使), 광주목사(廣州牧使)로 좌천되었다. 1161(의종15)에 중서시랑평장사에 오르고, 정중부의 난 때 다른 문신은 모두 화를 입었으나 평소 그의 덕망에 감화한 무신들이 그를 보호하여 화를 면했다. 명종이 즉위하자 중서시랑평장사에 다시 임명되었고 이어 수사공집현전대학사판예부사(守司空集賢殿大學士判禮部事)로 치사했다. 경사에 해박했으며, 불경에도 관심이 깊어 많은 학생과 승려의 자문에 응했다. 왕의 조서를 받들어 이한림집주(李翰林集註)을 편찬했고 유문사실(柳文事實)을 주해했다. 문집에 남도집(南都集)이 있으며 동문선(東文選)6수의 시와 45편의 문이 실려 있다. 시호는 문숙(文淑)이다.

지사[志士] 큰 뜻을 품은 사람. 절조 있는 사람. 국가나 민족을 위하여 몸 바쳐 일하려는 드높은 뜻을 가진 사람.

사업[事業] 일을 경영하는 것을 라 하고 그 일을 이루는 것을 이라 한다. 주로 생산과 영리를 목적으로 지속하는 계획적인 경제 활동. 비영리적 사회 활동. 일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

소인[宵人] 간사(奸邪)하고 도량이 적은 사람. 이익만을 좇는 사람. 소인(小人). 깡패. 악인.

경영[經營] 계획을 세워 사업을 해 나감. 사업이나 기업 등을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함. 규모를 정하고 기초를 세워 일을 해 나감. 기업이나 사업 따위를 관리하고 운영함.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해 나감. 계획을 세워 집을 지음.

희화[羲和] 고대 신화 가운데 해를 몰고 다니는 신을 말하기도 하고, 태양을 낳은 여자의 이름을 말하기도 한다. 전자는 초사(楚辭) 이소(離騷)의 왕일(王逸) ()에 근거하고, 후자는 산해경(山海經) 대황남경(大荒南經)에 보인다.

희화[羲和] 태양(太陽)을 싣고 다니는 어자(馭者)이름이다. 전하여 일월(日月)을 맡은 신()의 뜻으로 쓰인다. 매일 여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에 태양을 싣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행하다가 해가 들어가는 우연(虞淵)이라는 곳에서 수레를 돌린다고 한다. <天中記 卷1 >

희화[羲和] 희화는 천제(天帝) 제준(帝俊)의 아내로, 동해 밖 희화국(羲和國)에서 새벽마다 여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에 태양을 싣고 용을 몰아 허공을 달려 서쪽의 우연(虞淵)에까지 이르러 멈춘다고 한다. 곧 해수레를 모는 전설상의 여신이다. <山海經 卷10 大荒南經> <淮南子 卷3 天文訓>

희화[羲和]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는 대대로 천지사시(天地四時)를 다스리는 집안인데, 요 임금이 일찍이 희중(羲仲)에게는 동쪽 바닷가의 양곡(暘谷)이란 곳에 살면서 해가 뜨는 것을 경건히 인도하여 봄 농사를 고루 다스리게 하고, 화중(和仲)에게는 서쪽의 매곡(昧谷)이란 곳에 살면서 해가 지는 것을 공경히 전송하여 추수(秋收)를 고루 다스리게 하였다. <書經 堯典>

희화[羲和] 희화는 요순(堯舜) 시대의 역관(曆官)인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의 병렬 호칭이다. 요임금이 그 아들들인 희중(羲仲희숙(羲叔화중(和仲화숙(和叔)을 사방에 보내 거주하면서 천상(天象)을 관찰하고 역법을 제정하게 하였다. 희중(羲仲)은 농사철을 알려 주는 일을 담당하였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이에 역관 희씨와 화씨에게 명하여 하늘을 공경히 따라서 해와 달과 별자리를 기록하고 관찰하여 백성의 농사철을 공경히 내려 주게 하셨다. 희중에게 나누어 명하여 우이에 머물게 하시니, 이곳을 양곡이라고 일컫는바, 나오는 해를 공경히 맞이하여 봄에 시작하는 일을 차례대로 하니, 해는 중간이고 별은 조수(鳥宿)이다. 알맞은 중춘(仲春)이 되면 백성들은 흩어져 살고 조수(鳥獸)는 새끼를 낳고 교미한다.[乃命羲和 欽若昊天 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 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 日中 星鳥 以殷仲春 厥民析 鳥獸孶尾]”라 하였다. 채침(蔡沈)의 주()희씨와 화씨는 역상(曆象)으로 농사철을 알려 주는 것을 맡은 관원이다.”라고 하였다. 우이(嵎夷)는 해가 뜨는 곳으로, 고대 중국의 동쪽 끝인 산동(山東)의 해변에 있었다.

침침[駸駸] 나아감이 썩 빠름. 말이 빨리 달리는 모양. 일의 진척이 빠른 모양. 시간이 빨리 가는 모양.

하여[何如] 어떠한가? 어떠냐? 어떤. 어떠한. 어찌 ~만 하겠는가. ~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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