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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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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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당인[漢黨人] 한(漢) 나라의 당인이란 곧 후한의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에 걸쳐 이응(李膺)·진번(陳蕃)·두무(竇武) 등 우국지사들이 환관(宦官)의 발호를 미워하여 태학생(太學生)들을 거느리고 함께 그들을 공격하여 제거하려다가, 도리어 그들로부터 ‘조정을 반대하는 당인’으로 몰리어, 당시 뜻을 같이했던 1백여 인의 선비들과 함께 피살당한 사건을 말한다. <後漢書 黨錮傳>

한대[漢臺] 공신으로 책록(冊錄)되었음을 뜻한다. 한대(漢臺)는 바로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공신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공신 28인의 초상(肖像)을 걸어 놓았던 운대(雲臺)를 가리킨다.

한대서경[漢代西京] 한 나라가 장안(長安)에 도읍했었는데, 동한(東漢) 때에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기고 장안을 서경이라 했다.

한도성어사[漢道盛於斯] 두보의 시에서 한 나라는 문장이 심후해서 사마천(司馬遷), 사마상여(司馬相如), 유향(劉向), 왕포(王褒) 등 훌륭한 문장가가 많이 있었다는 뜻으로 쓰였다. <杜詩澤風堂批解 偶題 註>

한도혜왕[韓悼惠王] 한환혜왕(韓桓惠王)이라고도 불리우며 재위 272 ~ 239년이다. 한리왕의 아들로 재위기간 중 진나라가 맹렬한 기세로 6국을 병탄하기 위해 빈번히 한나라를 침략했다. 이에 한나라는 형(陘), 성고(成皐), 형양(滎陽) 등 10여 개 성을 진나라에 빼앗겼다.

한랑설리파[韓郞雪裏葩] 한유(韓愈)의 질손(姪孫)인 한상(韓湘)은 자신이 준순주(逡巡酒)를 빚어 잠깐 사이에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한유가 “네가 조화를 빼앗아 꽃을 피울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자, 한상은 흙을 쌓아 놓은 다음 동이로 덮어놓았다가 잠시 후 동이를 치우니 푸른 모란 두 떨기가 피어 있었는데 그 잎에 작은 금자(金字)로 “구름은 진령(秦嶺)에 비껴 있는데 집은 어드메뇨. 눈이 남관(藍關)을 둘러 말이 가지 못하누나.”라 적혀 있었다. 그 뒤 한유가 좌천되어 조주(潮州)로 가다가 남관에 이르러 눈을 만나고서 그 뜻을 깨달았다 하는데, 이때 한유가 멀리서 찾아온 한상에게 준 시 좌천지남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姪孫湘)에 역시 “구름은 진령에 비껴 있는데 집은 어드메뇨. 눈이 남관을 둘러 말이 가지 못하누나.”라 읊은 다음 “네가 멀리서 온 것은 뜻한 바 있어서임을 아노니, 장강(瘴江) 가에서 나의 유골을 거두어 주게.”라고 하였다. <太平廣記>

한로[韓盧] 전국 시대 한국(韓國)에서 생산된 준견(俊犬)의 이름이다.

한로입지완로적[漢老入地完老謫] 한로(漢老)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말하고 완로(完老)는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 이원익(李元翼)을 말한다. 이덕형은 광해군 5년(1613)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과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삭직(削職)된 채 양근(楊根)에 내려가 그해에 죽었으며, 이원익은 광해군 7년(1615)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홍천(洪川)에 유배되었다.

한록사[韓錄事] 고려 때의 명사(名士) 한유한(韓惟漢)을 이른다. 그는 지리산(智異山)에 은거하면서 조행(操行)이 고상하고 조촐하여 세상일을 간섭하지 않았는데,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한유한이 처음 서울에 살았으나, 최충헌(崔忠獻)의 정사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는, 장차 난(亂)이 일어날 것이라 여기고, 처자(妻子)를 데리고 지리산에 들어가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은거하였는데, 뒤에 나라에서 서대비원 녹사(西大悲院錄事)를 제수하여 불렀으나 끝까지 취임하지 않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종신토록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三十>

한롱적[韓隴笛] 농적은 농서 지방의 젓대 소리를 말한다. 한유(韓愈)의 화최사인영월시(和崔舍人詠月詩)에 “고을의 누대 어느 곳을 바라볼까 농서의 젓대 소리 이때에 듣네.[郡樓何處望 隴笛此時聽]”라고 하였다.

한륙견척[韓陸見斥] 당 헌종(唐憲宗) 때 한유(韓愈)가 황보박(皇甫鎛)의 배척을 받아 중용(重用)되지 못한 일과 당 덕종(唐德宗) 때 육지(陸贄)가 노기(盧杞) 등의 배척을 받은 일을 말한다. <唐書 卷一百五十七, 卷一百七十六>

한름진진속[漢廩陳陳粟] 사기(史記) 평준서(平準書)에 “太倉之粟 陳陳相因 充溢露積於外 至腐敗不可食”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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