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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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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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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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차광생[厭次狂生] 염차(厭次)는 고을 이름. 한대(漢代)의 부평(富平)동방삭(東方朔)이 평원(平原) 염차 사람으로 자칭 염차의 광생이라 하였으며, 그는 해학에 뛰어나고 사부(辭賦)에도 능했다.

염거태행[鹽車太行] 현재(賢才)가 세상에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매몰되어 곤경에 처한 것을 말한다. 옛날 천리마(千里馬)가 소금 수레[鹽車]를 끌고 태항산(太行山)을 올라가다가 더 이상 못 가고 쓰러졌는데, 백락(伯樂)이 이 말을 알아보고는 통곡을 하며 옷을 벗어 덮어 주자, 천리마가 백락을 쳐다보며 슬프게 울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戰國策 楚策4>

염촉사인[厭髑舍人]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 때에 불법(佛法)을 위해 몸을 바친 박염촉(朴厭髑)의 사실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상세하며 사인(舍人)은 염촉의 벼슬이다.

염파[廉頗] 염파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장인데, 풍당이 문제에게 위상을 풀어주라고 간하기에 앞서 문제가 내가 염파와 이목을 얻어 내 장수로 삼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그랬더라면 내가 어찌 흉노를 걱정할 일이 있겠는가.”라 하자, 풍당이 지금 위상 같은 인물도 제대로 부려 쓰지 못하면서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뜻으로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비록 염파와 이목을 얻었더라도 능히 쓰지 못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史記 卷一百二 馮唐傳>

염파복[廉頗伏] 전국 시대에 조왕(趙王)과 진왕(秦王)이 민지(澠池)에서 주연(酒宴)을 베풀 때 진왕의 강요로 조왕이 비파[]를 타니, 조왕을 따라갔던 인상여(藺相如)가 격분하여 진왕에게도 장구 치기를 청하였다. 진왕이 즐겨 치지 않으니 인상여가 왕이 장구를 치지 않으면 신()이 다섯 걸음 안으로 목을 찔러 피를 왕에게 뿌리겠습니다.”라 하니, 진왕이 할 수 없어 장구를 쳤다. 조왕이 민지에서 돌아와서 인상여에게 장군 염파(廉頗)보다 높은 벼슬을 주니, 염파가 불평하다가 나중에는 인상여의 도량에 감복하였다.

염파복고의[廉頗伏高義] 염파는 조 나라 장군으로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는데, 조왕은 민지의 모임에서 돌아와 인상여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상경(上卿)을 시키니 지위가 염파의 위였다. 염파는 이에 불만을 품고 상여와 대전할 것을 결심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상여는 피하고 만나지 않았다. 집 식구들이 의심하자 상여는 대답하기를 나는 강폭한 진 나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염장군(廉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현재 염 장군과 나는 이 나라의 두 범인데 만일 두 범이 싸운다면 누군가 하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진 나라에 이익을 안겨 주는 것이니 내가 피하는 것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고 개인의 감정을 뒤에 하려는 것이다.”라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매를 짊어지고 가서 사과한 다음 친교를 맺었다.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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