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벽[投僻], 투벽진공자[投璧晉公子], 투비시호[投畀豺虎], 투사[投梭], 투상부[投湘賦]
❏ 투벽[投僻] 한(漢) 나라 재상 소하(蕭何)가 전택(田宅)을 마련할 때에는 으레 벽지(僻地)에다 마련하고는 유유자적하였다는 소택벽(蕭宅僻)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53 蕭相國世家>
❏ 투벽진공자[投璧晉公子] 진 공자(晉公子)는 춘추 시대 오패(五霸)의 하나인 문공(文公)을 가리킨다. 문공이 공자로 있을 때 그의 외삼촌 호언(狐偃)과 함께 망명하여 진(秦) 나라에 있었는데, 진 목공(秦穆公)의 힘을 얻어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황하에 이르자 호언이 공자에게 구슬을 주면서 “내가 공자를 따라 온 천하를 다니면서 잘못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이제 작별을 고합니다.” 하니, 문공은 “외삼촌과 마음을 함께 하겠습니다. 저 하수를 두고 맹세합니다.” 하고는 그 구슬을 황하에 던졌다. <左傳 僖公 二十四年>
❏ 투비시호[投畀豺虎] 시경(詩經) 소아(小雅) 항백(巷伯)의 “저 참소하는 자들을 잡아다가, 승냥이와 범에게나 던져 주리라. 승냥이나 범도 먹지 않으면, 저기 북녘 땅에 던져 주리라.[取彼讒人 投畀豺虎 豺虎不食 投畀有北]”라는 말이 있다.
❏ 투사[投梭] 진서(晉書) 사곤전(謝鯤傳)에 “이웃집 고씨(高氏)의 딸이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곤(鯤)이 일찍이 유혹하였었는데, 그 여자가 북을 던져 곤의 이빨 두 개를 부러뜨렸다.”라고 하였다.
❏ 투상부[投湘賦] 한문제(漢文帝) 때 가의(賈誼)가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左遷)되어 가면서 상수(湘水)를 지나다가 초(楚) 나라 충신 굴원(屈原)이 일찍이 상수에 빠져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부(賦)를 지어서 상수에 던져 굴원을 조문하면서 자신의 불우(不遇)한 것을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