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랑청탁[滄浪淸濁]~창량[蒼凉]~창려부삼신[昌黎賦三辰]~창려유복[昌黎留服]
❏ 창랑청탁[滄浪淸濁] 전국 시대 때 초(楚) 나라의 굴원(屈原)이 쫓겨나서 강담(江潭)에 노닐 적에, 한 어부가 굴원이 세상을 불평하는 말을 듣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떠나가면서 말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라고 하였다.
❏ 창랑호탁영[滄浪好濯纓]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은둔 생활을 즐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서 어부가 노래하기를 “창랑수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며, 창랑수 흐리거든 내 발이나 씻으리.”라고 하였다.
❏ 창량[蒼凉] 공자(孔子)가 길을 가는데 두 아이가 해[日]를 두고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한 아이가 말하기를 “해가 처음 뜰 때에는 창창량량(滄滄凉凉)하다가 하늘 가운데 와서는 뜨거우니, 그것은 가까우니 더웁고 멀리 있을 때에는 서늘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창려[昌黎]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당(唐) 나라 문장 한유(韓愈)의 호이다.
❏ 창려노[昌黎老] 창려(昌黎)의 늙은이란 바로 창려 사람으로 창려백(昌黎伯)에 추봉된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 창려부삼신[昌黎賦三辰] 창려는 한유(韓愈)의 호이다. 한유가 시를 지어서 자기의 생년월일에 우성(牛星)과 두성(斗星)이 끼어 있어서 평생의 운수가 나쁘다고 한탄하였다.
❏ 창려유복[昌黎留服] 창려는 당(唐) 나라 한유(韓愈)의 별호(別號)이다. 한유가 태전(太顚)이라는 승려와 친하게 지내었는데, 그의 여맹상서서(與孟尙書書)에 “원주로 돌아올 무렵, 의복을 남겨 두어 이별의 정표로 삼았으니, 이것은 인정에서 발로된 것이요, 불교를 믿고 복덕을 구하려 함이 아니었다.[及來袁州 留衣服爲別 乃人之情 非崇信其法求福田利益也]”라는 구절이 있다.
❏ 창려자[昌黎子] 당 나라 한유(韓愈)의 별호이다.
❏ 창려환박수요소[昌黎宦薄愁饒笑] 창려는 당(唐) 나라 한유(韓愈)의 봉호이다. 한유는 특히 직간(直諫)으로 인하여 누차 폄적(貶謫)되어 미관(微官)으로 전전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