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논점십[鄭公論漸十]~정공향[鄭公鄕]~정관정요[貞觀政要]~정관혐[整冠嫌]
❏ 정공논점십[鄭公論漸十] 정공은 당(唐) 나라 위징(魏徵)이 정국공(鄭國公)에 봉하여졌으므로, 그를 지칭한 것이다. 그는 열 가지 조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것을 열거하여 당 태종(唐太宗)에게 상소하였다. 십점지소(十漸之疏). <唐書 卷七十七>
❏ 정공수채범저망[鄭公遂採范雎亡] 위(魏)의 범저(范雎)가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중상으로 위나라 공자(公子) 위제(魏齊)에게 매를 맞고 거짓 죽어 나와, 뒤에 정안평(鄭安平)의 도움으로 변성명을 하고 진(秦) 나라로 망명할 수가 있었다. <史記 卷79>
❏ 정공향[鄭公鄕] 한나라 말년의 유명한 학자인 정현(鄭玄)이 있었는데, 그 때에 황건적(黃巾賊)의 난리가 나서 온 세상이 들끓었는데, 그 황건적들이 정현이 사는 마을 앞에 와서 이 마을은 정공(鄭公)이 사는 마을이니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다 한다.
❏ 정공향[鄭公鄕] 후한 때 공융(孔融)이 경학자(經學者)인 정현(鄭玄)이 사는 마을을 특별히 ‘정공향’이라 명명한 데서 온 말인데, 정현의 집에는 계집종들도 시경(詩經)을 잘 알아서 보통 대화할 때에 시경의 구절을 척척 인용하였다 한다.
❏ 정과정[鄭苽亭] 고려 의종(毅宗) 때 정서(鄭敍)가 죄 없이 참소로 동래(東萊)에 귀양가서 임금을 그리워하여 거문고를 타고 슬피 노래한 곡조이다. <高麗史 樂志>
❏ 정과정곡[鄭瓜亭曲] 고려 의종 때에 정서(鄭叙)가 동래(東萊)로 귀양가 있으면서 임금을 생각하여 비파를 탔는데, 그 곡조를 정과정곡(鄭瓜亭曲)이라 한다. 과정(瓜亭)은 정서의 호(號)다.
❏ 정관[貞觀] 당 태종(唐太宗)의 연호이다.
❏ 정관정요[貞觀政要] 당 나라 오긍(吳兢)이 저술한 것인데, 당시의 법제 정령(政令)과 사적을 기록하였다.
❏ 정관지치[貞觀之治] 정관은 당 태종(唐太宗)의 연호. 당 태종은 영주(英主)로서 이 정관 연간에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 등의 현상(賢相)과 위징(魏徵) 등 직신(直臣), 이정(李靖)·이적(李勣) 등의 명장(名將)을 등용하여 천하가 태평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 정관혐[整冠嫌]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바루지 않는다는 것으로, 괜한 의심을 받을 일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