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李愬]~이소[離騷]~이소[離疎]~이소[二疏]
❏ 이소[李愬] 당나라 장수. 회서(淮西)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 토벌할 때에, 회서 반란군의 근거지인 채주(蔡州)까지 120리를 밤 눈 오는 틈을 타서 급하게 달려가, 닭이 울 때에 성중에 돌입하여 그 대장인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았다.
❏ 이소[離騷]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나라가 망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임금에게 바른 말을 아뢰다가 간신(奸臣)의 참소로 왕에게 신임을 잃고 쫓겨남을 당하여, 상강(湘江) 가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실망(失望)과 충분(忠憤)을 내용으로 이소(離騷)라는 애절(哀切)한 글을 짓고는 물에 몸을 던졌다.
❏ 이소[離騷] 초사(楚辭)의 편명(篇名)으로 굴원(屈原)의 저작이다. 굴원이 초 나라에 벼슬하여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겼는데 상관대부(上官大夫)가 그를 참소한 까닭으로 추방을 당하여 우수사려(憂愁思慮)에 잠겨 지은 서정시(敍情詩)로서 사부(詞賦)의 으뜸이 된다.
❏ 이소[離疎] ‘애타는 걱정에 걸리다, 근심에 걸리다, 애타는 호소, 또는 불평불만(不平不滿)’이라고도 하는데 보통은 ‘애타는 호소’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 이소[離騷] 이소는 모두 2490자로 된 굴원의 대표적인 서사이다. 이(離)는 별(別), 소(騷)는 수(愁) 즉 ‘이별의 슬픔’이라는 왕일(王逸) 설과 ‘근심을 만나다’라는 반고(班固) 설이 있다. 굴원은 이소의 시에서 그의 충정과 비탄, 애국과 원망, 참회와 절망, 끝으로 절명의 심정을 노래했다.
❏ 이소[二疏] 한 나라 선제(宣帝) 때의 명신(名臣)인 소광(疏廣)과 조카 소수(疏受)를 가리킨다. 소광은 태부(太傅)가 되고 소수는 소부(少傅)가 되었는데 같은 때에 나이가 들어서 치사(致仕)를 청하였다. 그러자 당시 사람들이 모두 어질게 여겨 그들이 시골로 돌아가는 날 전송하러 온 자들의 수레가 수백 대나 되었다고 한다.
❏ 이소[二疏] 한 선제(漢宣帝) 때 사람인 소광(疏廣)과 소수(疏受)의 숙질(叔姪)을 가리킨다. 소광은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고 소수는 소부(小傅)가 되었는데, 사람마다 영화스럽게 여겼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갈 때 임금과 태자가 하사한 금으로 전답을 사지 않고 날마다 친척과 친구를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 <漢書 卷七十一 疏廣傳>
❏ 이소[二疏] 한(漢) 나라 선제(宣帝) 때의 명신(名臣) 소광(疏廣)과 조카 소수(疏受)를 말한다. 광은 태자 태부(太子太傅)였고, 수는 소부(少傅)였는데 그 직에 있은 지 5년 만에 관직이 높아지고 명성이 널리 퍼졌으나, 벼슬과 명예가 너무 높으면 후회되는 일이 있을 것이라 하고 광이 조카 수와 함께 관작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여유 있는 여생을 즐겼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