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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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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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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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 한비자 제49편 오두 [5] -

 

옛날과 지금은 관습이 다르며, 시대에 따라서 방책도 달라야 되는 것이다. 만일 관대하고 여유 있는 정치로 절박한 시대의 백성을 다스리려 한다면, 그것은 채찍을 쓰지 않고 억센 말을 다루려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오늘날 유가나 묵가의 학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선왕은 천하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백성 대하기를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한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느냐고 반문하면 그들은 말한다.

사법관이 형을 집행하면 그로 인해 군주는 즐기던 음악을 멈추고, 사형의 통지를 받게 되면 그 때문에 군주는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그들이 극찬하는 현명한 왕인 것이다. 군신관계를 부자관계처럼 하면, 세상은 반드시 잘 다스려진다고 하는데, 그들의 말대로라면 화목하지 않은 부자는 전혀 없어야 한다. 사람에게 부모의 애정보다 더한 것은 없고, 부모면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을 반드시 잘 다스리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군주가 아무리 신하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어찌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선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비길 수 없으며, 더욱이 자식이 반드시 반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하물며 백성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다시 또 법률에 의해서 법을 집행하고, 군주가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는 인의를 나타내고 있지만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형을 집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형을 중지시킬 수 없는 것은 법 때문인 것이며, 선왕이 그 법을 없애지 않고 눈물을 별로 문제시하고 있지 않은 점으로 보더라도 인()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 韓非子 第49篇 五蠹 [5] -

夫古今異俗, 新故異備. 如欲以寬緩之政, 治急世之民, 猶無轡策而御駻馬, 此不知之患也. 今儒·墨皆稱先王兼愛天下, 則視民如父母何以明其然也? :「司寇行刑, 君爲之不擧樂聞死刑之報, 君爲流涕. 此所擧先王也. 夫以君臣爲如父子則必治, 推是言之, 是無亂父子也. 人之情性莫先於父母, 父母皆見愛而未必治也, 君雖厚愛, 奚遽不亂? 今先王之愛民, 不過父母之愛子, 子未必不亂也. 則民奚遽治哉? 且夫以法行刑, 而君爲之流涕, 此以效仁, 非以爲治也. 夫垂泣不欲刑者, 仁也然而不可不刑者, 法也. 先王勝其法, 不聽其泣, 則仁之不可以爲治亦明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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