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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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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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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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哀詩三首[]칠애시33 / 칠애시

 

- 王粲[왕찬] -

 

邊城使心悲[변성사심비] 변경의 성은 마음 슬프게 하니

昔吾親更之[석오친경지] 예전에 내가 직접 가본 적 있지

冰雪截肌膚[빙설절기부] 얼음 같은 눈은 살갗을 에고

風飄無止期[풍표무지기] 거센 바람은 그칠 기약이 없네

百里不見人[백리불견인] 백리 안에 보이는 사람 없으니

草木誰當遲[초목수당지] 초목을 누가 게을리 돌봤으랴

登城望亭燧[등성망정수] 성루에 올라 봉수대 바라보니

翩翩飛戍旗[편편비수기] 펄럭이는 변경 군영의 깃발

行者不顧反[행자불고반] 떠나는 이 돌아올 생각 못하고

出門與家辭[출문여가사] 성문 나서며 가족과 이별하네

子弟多俘虜[자제다부로] 자제들 대개 오랑캐 포로 되니

哭泣無已時[곡읍무이시] 울부짖는 소리 끊일 때 없네

天下盡樂土[천하진악토] 천하에 낙토 모두 사라졌으니

何爲久留茲[하위구류자] 어찌 오랫동안 여기 머물랴만

蓼蟲不知辛[요충부지신] 여뀌 벌레가 매운맛을 모르듯이

去來勿與諮[거래물여자] 떠나니 머무니 서로 묻지를 않네

 


왕찬[王粲] 후한(後漢) 말기와 삼국 시대 위()나라의 문인으로 자가 중선(仲宣)이다. 산양(山陽) 고평(高平) 사람이다. 박람다식(博覽多識)하고 문사(文詞)가 넉넉하였다. 후한(後漢) 헌제(獻帝)가 동탁(董卓)의 강요에 못 이겨 장안(長安)으로 천도하였을 때 배종했고, 거기서 당대의 학자 채옹(蔡邕)의 눈에 들었다. 채옹(蔡邕)은 그의 재주를 훌륭하게 여겨 그가 올 때마다 신을 거꾸로 신고 나와 마중하였다 한다. 17세 때에 사도(司徒)의 임명을 사양하였다. 얼마 후 동탁이 암살되어 장안이 혼란에 빠지자 형주(荊州)로 몸을 피해 유표(劉表)를 의탁해 15년을 지냈다. 유표가 죽자 유표의 아들 유종(劉琮)을 설득하여 조조(曹操)에게 귀순시키고 자신도 승상연(丞相椽)이 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후에 조조가 위왕이 되자 시중(侍中)으로서 제도개혁에 진력하는 한편, 조씨 일족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집단 안에서 문인으로서도 활약하였다. 조식(曹植)과 더불어 조왕(曹王)으로 불렸다.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이자 대표적 시인으로 가장 표현력이 풍부하고 유려하면서도 애수에 찬 시를 남겼는데 등루부(登樓賦), 종군시(從軍詩) 5, 칠애시(七哀詩) 3수는 유명하다. 문집으로 왕시중집(王侍中集)이 있다. 왕찬이 일찍이 유표(劉表)에게 가서 의지해 있을 때 유표는 그의 외모가 못생기고 몸이 약하며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여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왕찬은 뜻을 얻지 못하고 고향이 그리워지자 당양성루(當陽城樓: 혹은 강릉성루江陵城樓)에 올라가 시사를 한탄하고 고향을 생각하며 진퇴위구(進退危懼)의 정을 서술하여 등루부(登樓賦)를 지은 고사가 있다. <文選 卷11 登樓賦><三國志 卷21 魏書 王粲傳>

칠애시[七哀詩] 칠애(七哀)는 일곱 가지 슬픔이란 의미로, 위진(魏晉) 시대 악부(樂府) 가사(歌辭)의 시제(詩題)로 많이 쓰였다. ()나라 악부시가의 원시행(怨詩行)에 칠애(七哀)라는 편명이 수록되어 있다. 후한(後漢) 말의 왕찬(王粲)과 삼국 시대 위() 나라 조식(曹植)과 진() 나라 장재(張載)의 칠애시(七哀詩)가 전하는데, 사회의 동란을 반영하고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오언시(五言詩)이다. 삼국 시대 위()나라 조식(曺植)의 칠애시(七哀詩)가 유명한데, 이 시에 대한 문선(文選)의 주석란에 육신(六臣)의 한 명인 당()나라 여향(呂向)칠애는 아파서 슬프고, 의리상 슬프고, 느꺼워 슬프고, 원망스러워 슬프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슬프고, 입으로 탄식하며 슬프고, 코가 시어서 슬픈 것이다[七哀謂痛而哀, 義而哀, 感而哀, 怨而哀, 耳目聞見而哀, 口歎而哀, 鼻酸而哀也.]”라고 하였다. <六臣註文選 卷23> 원나라 사람 이야(李冶)는 그의 저서 경제고금주(敬齋古今黈)사람의 칠정 희로애락애오옥(喜怒哀樂愛惡欲) 가 가장 앞선 감정으로 슬퍼함이 너무 심하니 나머지 감정이 없어지고 애만 남았음으로 칠애(七哀)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변성[邊城] 변경(邊境)에 있는 성(). 나라의 경계(境界)가 되는 변두리의 땅에 위치한 성을 이른다.

기부[肌膚] 살갗. (). 사람이나 동물의 몸을 싸고 있는 살, 또는 살가죽.

풍표[風飄] 풍표(風飆). 폭풍. 회오리바람. 미친 듯 거세게 부는 바람. 두보(杜甫)의 시 수함(水檻)푸른 강에 사나운 바람 자주 불어오고, 비와 구름 밤낮으로 날아다니네[蒼江多風飆 雲雨晝夜飛]”라고 하였다. 또 이백(李白) 채련곡(採蓮曲)해는 새 단장을 비추어 물속에 밝고요, 바람은 향그런 소매 날려 공중에 펄럭이네[日照新粧水底明 風飄香袂空中擧]”라고 하였다.

정수[亭燧] ()은 망대(望臺), ()는 봉수(烽燧). 망대로써 적의 행동을 탐지하고 봉수로써 급변을 연락하였다.

수기[戍旗] 변방에 주둔하며 변경을 지키는 군대의 깃발.

편편[翩翩] 새가 가볍고 날렵하게 나는 모습. 가볍게 나부끼거나 훨훨 나는 모양. 풍채가 풍류(風流)스럽고 좋은 모양. 건축물이 번듯하고 웅장하고 화려한 모양. 거들거리는 기색이 있는 모양. 경솔한 행동.

부로[俘虜] 포로(捕虜). 전쟁에서 사로잡힌 적군.

낙토[樂土] 즐거운 땅.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곳. 늘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좋은 땅. 부유하게 지내는 곳.

요충[蓼蟲] 여뀌에 기생하는 벌레이다. 초사(楚辭) 작품인 동방삭(東方朔)의 칠간(七諫) 중 원세(怨世)계화 좀벌레는 머물 줄을 모르고, 여뀌 벌레는 아욱으로 옮겨갈 줄을 모르네[桂蠹不知所淹留兮 蓼蟲不知徙乎葵菜]”라고 했는데, 왕일(王逸)의 주()여뀌 벌레는 맵디매운 식물에 붙어살면서 쓰고 고약한 것을 먹으면서도 아욱으로 옮겨가 단것을 먹을 줄도 모르는 채 평생 고생만 하다 병들고 야위는 것을 말한 것이다[言蓼蟲處辛烈 食苦惡 不能知徙于葵菜 食甘美 終以困苦而癯瘦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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