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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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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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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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관[瀛洲關] 당 태종(唐太宗)이 영주관을 짓고 천하의 현재를 이곳에 불러들여 예우(禮遇)하였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존모하여 등영주(登瀛洲)라 하였다. <唐書 褚亮傳>

영주구[伶州鳩] () 나라 경왕(景王)의 악관(樂官). 영주구(泠州鳩)라고도 한다.

영주산[瀛洲山]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으로, 여기에는 신선들이 살며 불사약(不死藥)이 있고 새와 짐승이 모두 희며,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영주산[瀛洲山] 한라산(漢拏山)을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이라고도 한다.

영주십팔[瀛洲十八] 당 태종이 설치한 영주관(瀛洲館)에 뽑혀 들어간 열여덟 명의 학사(學士)를 말한다. 당 태종이 인재들을 모두 끌어모으고는 문학관(文學館)을 설치하여서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 18명의 문관을 임명하여 학사로 삼았다. 그런 다음 이들을 돌아가면서 관중에 머물게 하고 한가한 날이면 그들과 더불어 정사를 논의하고 학문을 토론하였다. 그리고 또 염입본(閻立本)에게 명하여 화상(畫像)을 그리게 하고 저량(褚亮)에게 찬()을 짓게 해서 이를 관 안에다가 걸고는 이들을 십팔학사라고 불렀는데 당시 사람들이 몹시 흠모하여 등영주(登瀛洲)라고 하였다. <新唐書 褚亮傳>

영주지언[瀛州之彦] 당 나라 태종(太宗)이 글 잘하는 18명의 학사(學士)를 모아서 우대하니, 당시의 사람들이 그들을 신선이 사는 영주(瀛洲)에 올랐다고 부러워하였다.

영중가[郢中歌] 비속한 유행가. ()은 초()의 수도이다. 전하여 속인들의 환심을 말한 것이다.

영중무인[郢中無人] 품격이 높을수록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문선(文選) 송옥 대초왕문(宋玉 對楚王問)한 사람이 영중에 나가서 하리파인(下里巴人) 같은 낮은 곡을 부르자 따라 부르는 자가 수천 명이나 되더니, 양춘백설(陽春白雪) 같은 높은 곡을 부르자 따라 부르는 자가 몇 명에 불과하더라.”고 하였다. 영은 초()의 수도이다.

영중유음[郢中遺音] 언영(鄢郢)은 초 나라 서울이다. 전국시대 초 나라 송옥(宋玉)대초왕문(對楚王問)’에 나온 말을 인용한 것인데, 어떤 사람이 언영에서 노래를 부를 때 그가 하리파인(下里巴人)을 부르자 그에 화답한 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으나 양춘백설(陽春白雪)을 부르자 화답하는 자는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다.

영중질[郢中質] 영중(郢中)에 어느 장인(匠人)이 자귀[]질을 잘하여 사람의 코에다 조그맣게 흙을 얹어 두고 자귀로 그것을 깎았는데, 자귀에서 바람이 나서 흙은 다 깎아 내어도 코는 상함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감히 코를 대주지 못했는데, 한 사람은 코를 대주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죽은 뒤에 장인(匠人)이제는 나의 바탕[]이 없어졌다.”라 하고 자귀질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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